백진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좋네요. 보도자료로 온 사진이 몇 장 있는데 보내드릴게요.” 문화방송(MBC) <오만과 편견>에 출연 중인 백진희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는 말에, 담당 기자는 내게 자신이 받은 보도자료를 보내줬다. 백진희가 한 잡지사와 화보 촬영을 겸한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홍보하는 자료 속에서, 화보 사진도 사진이지만 인터뷰어가 ‘그동안 생각한 것과는 다른 수많은 모습들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문구가 더 눈에 띄었다. 홍보자료가 그렇듯 적당히 과장된 코멘트일 게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호기심이 당겼다. 도리가 없었다. 집 앞에 나선 김에 동네 서점에 들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확인해 보는 수밖에.
인터뷰 내용은, 글쎄, 역시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티브이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았다고. 작은 체구나 동안처럼 타고난 특유의 외양을 물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으니 연기로 극복하려 노력했으며, 문화방송 <기황후>(2013)의 타나실리 역을 맡아 악역을 잘해낸 것을 입증한 것도 도전이었다는 이야기. 조금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심있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 이 정도 이야기가 ‘그동안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이라면, 대체 사람들은 그동안 백진희를 어떻게 보았던 거지? 그냥 작고 귀여운, 마냥 발랄한 소녀?
확실히 겉만 보면 백진희는 대중문화가 흔히 묘사하는 ‘소녀’의 이미지에 가까운 외양을 지니고 있다. 작고 가녀린 체구, 쌍꺼풀 없는 눈과 볼살의 조화로 나이보다 네다섯 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얼굴, 여리고 귀여우며 발랄하고 순수한 존재. 그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은 흡사 아기 고양이나 러버덕을 마주했을 때 터져나오는 환호와 닮았는데, 섬세한 선이나 그윽한 눈빛의 뉘앙스 같은 묘사들이 줄줄 이어지는 게 아니라, 보자마자 “귀엽다”고 외칠 만큼 즉물적인 반응에 가깝다. 하지만 그 귀여움을 그저 전시하는 데 그쳤다면 백진희는 지금보다 덜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가 진짜 흥미로운 이유는, 스스로 그 이미지를 곧잘 배반해왔다는 점에 있다. 귀여운 외모로 보는 이들을 방심시키고는, 돌연 ‘소녀’의 이미지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 ‘욕망’이나 ‘환멸’, ‘우울’과 같은 요소들을 보는 이들 코앞으로 들이밀어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화면 위에서도 마냥 착한 아이이거나 무난한 인생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배역을 따러 간 <반두비>(2009) 오디션장에서 “넌 착한 아이니?”라고 묻는 신동일 감독의 질문에 “또래 친구들 제치고 혼자 캐스팅되려고 하는 건데 그게 착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던 그는, 화면 위에서도 조금은 의외의 인물이 되어 살았다. 원어민 영어학원에 다닐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성인 마사지 업소에 취업한다거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 카림의 임금을 떼어먹은 악덕 사장의 집에 쳐들어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반두비>의 민서는, 사람들이 여고생에게서 찾아보고 싶지 않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요소들을 훈장처럼 두르고 있다. 민서는 어른들의 말이나 세계를 두려워하는 대신 한껏 조소하고, 분노든 환멸이든 제 감정을 날것으로 꺼내어 던진다. 얼씨구, 마사지 업소에서 만난 담임에게 “많이 굶주리셨나 봐요”라고 농담을 던지질 않나. 절씨구, “또 그런 곳에서 일하다 걸리면 혼난다”는 엄포에는 “또 오시게요?”라고 조소로 되받아치는 여고생이라니.
귀여움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 이미지를 곧잘 배반해온 그
“보이는 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틀에 박힌 시선에 갇히지 않고
치열하게 스스로를 증명하는 중 성적 취향에 대한 발랄한 찬미로 가득한 아슬아슬한 상업영화 <페스티발>(2010)의 자혜도 사정이 딱히 다르진 않다. 자혜는 여고생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가진 중년들에게 자신의 땀내가 밴 속옷을 팔아 용돈을 챙기는 영악한 학생이지만, 정작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에게는 기본적인 호감도 얻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저이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망설이고 가슴 졸이고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돌아서는 전형적인 소녀 같은 건 화면 위에 없다. 대신 그 자리엔 에둘러 말하는 대신 제 욕망을 돌직구로 뿌려대는 자혜가 있다. 자혜는 피로회복 드링크에 발정제를 섞어 건네거나, “나 맛있겠지?”라고 상대를 도발한다. 백진희는 자칫 “발랑 까진 쉬운 여고생”이라는 판타지의 대상으로 소비될 수도 있었을 자혜 캐릭터를 건강한 욕망의 주체로, 자기 감정의 주인으로 그려내는 곡예에 성공했다. ‘당돌하다’거나 ‘맹랑하다’ 같은 표현은 범주오류다. 배역들의 단편적인 공통점에 홀려 ‘당돌하다’는 표현으로만 설명하면, 이란성쌍둥이 오빠를 사랑하는 <열여덟, 열아홉>(2009)의 서야나, “대학 4년 반 동안 추억도 없이 아르바이트만 했는데 남은 건 학자금 대출 3658만원”인 문화방송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의 진희를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각각 근친애와 희망도 없는 청춘의 그림자라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지점을 툭툭 건드리는 이 배역들은 ‘당돌’하지 않다. 그저 자신이 처한 감정과 환경에 충실할 뿐. 10초 안에 짜장면 그릇을 비우면 일자리를 주겠노라는 면접관 앞에서 9.74초라는 기록을 세우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진희의 절박함을 ‘당돌’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캐릭터에 대한 결례일 것이다. 그가 맡아왔던 배역의 핵심은 당돌함이 아니라 규범이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제 감정들을 솔직하고 충실하게 인정한다는 점에 있다. 여고생도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자니 어른들이 만든 볼품없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욕망한다. 마냥 푸르를 것을 강요당하는 청춘은 사실 취업난과 빚더미에 허덕이느라 아프기 짝이 없다. 백진희는 어떠한 전형에 갇혀 대상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쌩얼’에 가까운 감정들이 살아 숨쉬는 배역을 찾는다. 앞서 사람들의 시선과는 달리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강조했던 백진희가, 인터뷰를 통해 “저 안 당돌한데”라고 잘라 말한 건 어쩌면 기껏 전형성에 갇히길 거부해온 결과가 ‘당돌하다’는 짧은 서술 안에 갇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인 배우,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배우는 몇몇 단편적인 모습들만으로 평가받기 쉽다. 연기라는 재능을 파는 직업인인 동시에 이미지를 파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는 이들로부터 즉각적으로 “귀엽다”는 평을 끌어내는 외모는 분명 큰 자산이다. 일찍이 “배우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먹고살 만큼의 상업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제 미래를 냉정하게 평가했던 백진희가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배우의 노력과 성취 대신 외모와 인상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바라본다는 건 배우로서 서글픈 일 아닌가. 필모그래피 내내 줄곧 전형성이나 이상향에 갇히는 걸 거부하며 치열하게 연기해 온 데뷔 7년차 배우는, 새삼스레 “보이는 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쉽게 정의하고 넘겨짚으려는 시선들과 치열히 싸워 스스로를 증명하는 중이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