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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9 19:02 수정 : 2015.10.23 14:23

신동엽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오늘 밥상을 좀 망치면 어때요…잘하진 못해도 즐거우시렵니까

일하다 보면 제 장점은 한없이 작아 보이는데 약점만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생긴다. 확신을 가지기 어려우니 전처럼 자신있게 일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단점이 더 부각된다. 단점이 부각되면 확신을 갖는 건 더더욱 어려우니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요원해진다. 남 이야기 하듯 말했지만 사실 내 이야기다. 마감을 하고 나면 잘못 쓴 문장만 더 크게 보이고, 주변의 호평은 다 예의상 하는 말처럼 들리는 지긋지긋한 악순환. 이런 고민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꾸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고, 글에 대한 사소한 지적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려도 너는 너 자신을 믿어줘야지” 주변 사람들에게는 쉽게 했던 말을 정작 스스로에겐 하지 못했고, 마음이 지치니 일이 없는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누가 티브이로 밥 먹고 사는 사람 아니랄까봐,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실마리 또한 티브이에서 찾았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요리를 하고 수다를 떨다가 먹방으로 마무리하는 올리브채널 <오늘 뭐 먹지?>를 보던 내게, 같이 보던 친구가 이런 말을 던진 것이다. “신동엽이 ‘보케’야? 신선하네?” 일본 만담의 전통에서 바보 같은 일을 일삼아 상대에게 잔소리를 듣는 역할을 일컫는 ‘보케’라는 단어가 귓전에 달라붙었다. 그러게, 신동엽이 누군가에게 뭔가를 못한다는 걸 지적받으며 놀림의 대상이 되는 거 참 오랜만이네. 화면 속 신동엽은 요리에 몰래 화학조미료를 넣으려다가 성시경에게 걸려 한참을 놀림 받고 있었다. “아니, 이럴 거면 이 앞에 요리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신동엽씨.”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신동엽은 꽤나 즐거워 보였는데, 그의 이력을 돌이켜보면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신동엽은 뭐든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 데뷔한 유재석에겐 10년 가까운 무명 기간이 있었고, 강호동조차도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신동엽에겐 무명이라 할 만한 기간이 없었다.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셈 치고 시험삼아 주어진 기회, 생짜 신인 신동엽은 속사포 같은 수다와 듣는 이의 혼을 빼놓는 부조리한 횡설수설로 보는 이들의 템포를 훔치는 콩트를 선보였다. 선배들이 쓰던 기차 세트는 고스란히 신동엽의 차지가 되었고,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전설적인 유행어를 남긴 에스비에스(SBS)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1991) ‘레일맨’ 코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전무후무한 기록. 1990년대는 콩트 코미디에서 버라이어티 쇼로 예능의 중심축이 이동하던 시기였고, 말의 뉘앙스와 호흡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신동엽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데뷔 4년차인 1994년 이미 에스비에스 <기쁜 우리 토요일>의 사회자가 되어 버라이어티 쇼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고, 뒤이어 1996년 방영된 문화방송(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도 신동엽은 쇼의 중심축이었다. 제목처럼 남자 주인공 셋과 여자 주인공 셋을 앞세운 시트콤이었음에도 <남자 셋 여자 셋>은 신동엽이 건강할 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그가 건강 문제로 잠시 하차했을 때 주춤했으며, 그가 복귀했을 때 다시 시청률이 뛰어올랐을 만큼 신동엽 중심의 시트콤이었다. 콩트에서 버라이어티로,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시트콤으로. 데뷔 10년도 채 되기 전에 신동엽은 예능인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에서 정상을 찍었다.

데뷔 10년도 안돼 정상 올랐던 신동엽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당황하던 그가
매주 구박을 듣는데도 헤헤거리며
약점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 너머로 한발 나가고 있다

실패를 모르던 그가 주춤했던 건 2000년대 중반이었다. 꾸준히 몸값을 올리며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예능인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섰던 신동엽은 동료들을 영입해 매니지먼트 기획사를 세웠고, 쉴 때와 일할 때를 정확히 나눠 스스로를 관리해가며 방송에 전념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회사 일에 매몰되었다. 의욕적으로 달려든 경영은 그의 동업자가 그를 배신하면서 상처만 남기고 끝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사이 방송가의 조류는 리얼 버라이어티로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신동엽과 동년배이지만 언제나 한발쯤 뒤에 있었던 유재석과 강호동은 각각 문화방송 <무한도전>과 한국방송 <해피선데이 1박2일>로 정상의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신동엽 또한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오빠밴드’(2009)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신통치 않다는 건 시청률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아내인 선혜윤 프로듀서가 연출했던 ‘오빠밴드’는 록밴드의 꿈을 간직한 중년의 예능인들이 모여 밴드를 결성하는 내용의 리얼 버라이어티였는데, 신동엽은 프로그램 안에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겉으로는 “일을 하러 나왔는데도 아내를 봐야 하는 곤욕”을 이야기하며 농담을 던졌지만, 정작 불편해 보이는 건 따로 있었다. 진행이든 농담이든 콩트든 언제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익숙했던 신동엽이, 처음으로 뜻대로 베이스를 칠 수 없어 당황하는 모습과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들켰다는 당혹감에 웃음을 잃은 것이다.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주도하고 상황을 장악하던 신동엽은 없었고, 공연 무대에 서서 베이스를 연주할 때면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에 얼굴이 돌처럼 굳어지는 ‘진지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간신히 신동엽이 프로그램에 적응하고 웃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오빠밴드’는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되었다. 도전이 끝났고 상처가 남았다.

언제나 뭐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도 뭔가 잘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들켰을 때의 트라우마. 리얼 버라이어티 열풍이 한풀 꺾이고 난 뒤 신동엽은 다시 정상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재기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해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티브이엔(tvN)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나 제이티비시(JTBC) <마녀사냥>에서 날고 기는 솜씨를 보여주던 신동엽은, 한국방송 파일럿 프로그램 <미스터 피터팬>(2014) 촬영장에선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형은 이런 거 잘 알 거 아냐. 재석이랑 <패밀리가 떴다>(에스비에스·2008)도 해봤으니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여전히 어색하다며, 신동엽은 윤종신에게 기댔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신동엽 또한 부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감안하고 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신동엽은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미스터 피터팬>은 정규편성에 실패했다.

그랬던 그가 매주 성시경에게 구박을 듣는데도 편한 모습으로 헤헤거리고 있다니. 칼질은 서툴고, 매번 어떤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지 까먹는 통에 곁눈질로 성시경을 훔쳐보거나 제작진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그랬음에도 가끔은 끝끝내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드는 데 실패하지만. <오늘 뭐 먹지?>에서의 신동엽은 언제나 흥겨워 보인다. 언제나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을 선호했으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걸 강박적으로 싫어했던 신동엽이, 이제 성시경의 리드에 따라 요리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즐거워하는 것이다. 오늘 밥상을 좀 망치면 뭐 어때, 다음 밥상을 잘 차리면 되지.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구와 함께 요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뭔가를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걸 겁내지 않고, 덕분에 요리 쇼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약점 한두 가지는 있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만으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그 강박 때문에 오히려 약점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모래늪에 빠졌을 때 나오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게 빠지는 것처럼, 아직 공연에 설 만큼 베이스기타를 잘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쓴 탓에 무대 위에서 웃음을 싹 잃어버렸던 ‘오빠밴드’ 시절의 신동엽처럼. 약점을 극복하는 것의 첫걸음은 자신에게 약점이 있다는 걸 편안한 자세로 인정하는 것이다. 데뷔 24년차가 되던 해, 신동엽은 서툰 칼질과 어설픈 요리 실력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늘 잘해왔던 안전한 영역을 벗어나, 자신의 한계 너머에 있던 미답의 영역으로.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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