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 아이돌 레이프 가렛에 환호했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찍혀 퇴학당한 후 엘리트 남편에 기가 눌린 채 딸자식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현숙(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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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마흔이 되던 해에 한해 동안 마녀 역할만 제안이 세 번이 들어오더군요. 할리우드에서 마흔 넘은 여자배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호를 받은 기분이었어요.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죠.” 영화 <숲 속으로>(2014)의 프로모션을 위해 비비시(BBC)의 <그레이엄 노턴 쇼>에 출연한 메릴 스트립의 얘기다. 20여년 전의 일임을 고려하고 그 시절의 촌스러움을 이해해보려 해도 그리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동시대 여자배우들 중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메릴 스트립조차도 마흔이 되는 순간부터 들어오는 역할이 그 모양이었는데 다른 여자배우들은 어땠으랴. 하물며 바다 건너 한국은 어땠을까?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의 30~40대 여자배우들이 브라운관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곱씹어보면 암울하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혜자는 <전원일기>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정수씨가 집필한 10년 동안은 그 엄마의 공간도 만들어주고 했는데 바뀐 작가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만날 엄마는 ‘들어왔니? 밥 먹었니?’만 했죠. 그러다가 결국은 시청자가 외면했죠.” 김혜자처럼 동시대 최고의 위치에 있던 이조차 ‘들어왔니? 밥 먹었니?’ 정도가 대사의 전부이던 시절. 그 90년대를 20대로 보냈고 지금 40~50대가 되어 활발히 활동 중인 일군의 여자배우들의 리스트를 훑어봐도 기분이 썩 좋아지지는 않는다. 여자배우들을 위한 좋은 역할이 드물다 보니, 염정아나 김성령처럼 좋은 배역을 맡아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는 이들조차 커리어의 중간쯤엔 은퇴도 안 했는데 ‘잊혀졌다가’ 어느 순간 ‘재발견’되는 과정을 거쳐 산업의 중심으로 돌아와야 했다. 연예계야 늘 좋은 배역은 드물고 그 배역을 노리는 이는 많은 적자생존의 공간이라지만,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주인공을 맡아 극의 핵심을 차지했던 남자배우들에 비하면 여자배우들이 겪어야 했던 세월은 가히 생존투쟁에 가깝다. 일에 전념하다가 마흔이 되면 사방팔방에서 결혼은 왜 안 하느냐고 물어대고, 결혼과 출산을 겪고 나면 육아를 위해 한 몇 년은 커리어에 공백이 생기는 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아닌가. 남자 연예인이 출산 직후 본업에 복귀하면 축하의 인사가 쏟아지지만, 여자 연예인이 출산 직후 본업에 복귀하면 ‘욕망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 촌스러움을 뚫고 살아남은 생존자의 리스트를 보며 즐거워하는 건 어쩐지 조금 한가롭다. 특정 집단이 사회에서얼마나 존중받느냐로
줄을 세웠을 때
아마 가장 뒷줄에 서 있을 법한
저학력 전업주부의 인정투쟁
그 역할을 채시라가 맡음으로써
여성 서사를 그린
작품의 의미는 한층 배가된다 평론가들이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환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기억 속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요리 연구가 순옥(김혜자), 성공한 아나운서로 살아왔지만 ‘노처녀’라는 뒷담화와 후배들의 견제 속에 프로그램에서 밀려난 현정(도지원), 1970년대 미국 아이돌 레이프 가렛에 환호했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찍혀 퇴학당한 후 엘리트 남편에 기가 눌린 채 딸자식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현숙(채시라·사진), 모범생으로 살 것을 강요당하며 대학강사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인문학이 찬밥 신세가 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마리(이하나)까지. 드라마는 순종적이고 유능하며 선량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 맞추느라 인생이 어느 한 군데씩 어긋난 여성 3대로 이루어진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뻗는다. 이순재나 손창민, 박혁권, 김지석 같은 쟁쟁한 남자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극은 온전히 여성 캐릭터들을 중심에 세운다. 좀처럼 여자배우들을 위한 배역, 여성을 중심으로 세운 이야기가 드문 세상에 이런 드라마가 나왔으니, 김혜자나 장미희, 도지원, 채시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꿈의 섭외도 가능했으리라. 특히나 못 배우고 과격한데다 늘 어딘가 주눅들어 있는 주부 현숙 역할의 채시라를 보는 건 제법 신기한 경험인데, 그가 이렇게 주변부의 인생을 연기하는 게 제법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으로 남편을 죽이고 친아들과 대립하는 악마적인 여자였고(에스비에스 <다섯 손가락>, 2012), 궁궐의 권력 암투를 헤치고 올라 왕의 어머니가 되는 여인이었으며(제이티비시 <인수대비>, 2011), 여자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였다(한국방송 <천추태후>, 2009). 한국방송 <해신>(2005)의 자미부인 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법한 이 리스트 안에서 채시라는 언제나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채 누군가와 대립하고 있었다. 매년 한두 작품씩 결과물을 남기던 9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들어 다소 뜸해진 필모그래피는 아쉽지만, 채시라는 적어도 그 뜸해진 결과물 안에서만큼은 극의 중심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림했다. 아니, 어쩌면 90년대에 비해 뜸해진 필모그래피 자체가, 40~50대 여자배우들이 차츰 극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든 한 인물로서의 중량감을 잃지 않는 배역을 찾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꼭 ‘군림하는’ 역할이 아니더라도, 돌이켜보면 채시라가 맡아왔던 배역은 언제나 세상 속에서 제 몫의 정당한 존중과 무게를 요구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곤 했다. 제 능력과 열정으로 도시 속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상민을 연기한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1995)나, 식민지 조선에서 겹겹이 쌓인 모순을 뚫고 춤사위로 날아오른 천재 춤꾼 최승희를 연기한 문화방송 <최승희>(1995), 단순히 주인공의 여자친구로만 소비되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에어버스사의 실내디자이너라는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올린 인물로 그려지는 문화방송 <파일럿>(1993), 한국 현대사의 희생양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미국 전략사무국(OSS)에 들어간 주체적인 인물이었던 윤여옥을 연기한 문화방송 <여명의 눈동자>(1992) 등의 리스트들은 눈으로만 훑어보는 것도 벅찰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전설적인 데뷔였던 롯데 가나초콜릿 광고부터도 그랬다. 동시대 오리온 투유초콜릿이 장국영이나 유덕화와 같은 홍콩 스타와 여성모델 간의 로맨스를 그릴 때 채시라는 혼자 석양을 바라보며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 감미”로움을 설파했다. 처음부터 누군가의 부속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혼자 제 서사를 완성하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현숙 역할은 더 흥미롭다. 엘리트 남편은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것만 같고, 딸자식은 기껏 키워놨더니 엄마를 창피해한다. 자산을 운용해보겠다며 집안 재산을 모조리 들고 가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날려먹었으니 발언권은 더 줄어들고, 기껏 모질게 목숨을 끊어볼까 싶어 건물 옥상에 올라가도 아찔한 높이에 주눅들고 만다. 누가 봐도 인생 토너먼트의 패배자이지만, 현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발언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아버지나 나나 인생 하자야” 하고 서럽게 울던 현숙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주눅든 인생을 바로잡아야겠다며 모교에 퇴학처분을 무효화해달라는 청원을 넣고, 반성문을 ‘성의 있게’ 쓰라는 검사의 닦달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 포효한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잘나가는 커리어가 없어도 그걸 이유로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듯 말이다. 특정 집단이 사회에서 얼마나 존중을 받느냐로 줄을 세웠을 때 아마 가장 뒷줄에 서 있을 법한 저학력 전업 가정주부의 인정투쟁. 그 역할을 커리어 전체를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채워온 채시라가 맡음으로써 여성 서사를 그린 작품의 의미는 한층 배가된다.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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