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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7 19:50 수정 : 2015.10.23 14:21

사생활에서조차 수지는 남성들의 첫사랑이어야만 할까.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에 대한 연예가십매체의 보도는 ‘국민 첫사랑’이라는 상품이 다른 사람과 연애해 상품가치가 떨어진 것을 못마땅해하는 자본주의적 남성 욕망을 반영한다. 영원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배가시켜준 영화 <건축학개론>의 수지.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사생활 장사 언론이나, 배신감에 떠는 팬들이나 마찬가지

시작은 <디스패치>의 보도였다. 지난 23일 <디스패치>는 언제나처럼 ‘단독’으로 포착했노라며 각각 화보 촬영을 위해 프랑스와 영국으로 출국한 배우 이민호와 미스에이의 멤버 수지가 일정을 마친 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런던 샹그릴라 호텔에서 만나 이틀간 데이트를 즐겼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상세한 파파라치 사진이 첨부된 것은 물론이었고, 앞서 한국에서 포착한 데이트 현장 사진과 두 사람이 위장을 위해 선택한 패션 아이템들을 분석·평가하는 기사가 뒤를 이었다. 영국까지 날아가 찍어 온 사진이란 걸 생색이라도 내듯, 디스패치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킹스맨>(2014)의 대사를 빌려 “매너가 수지를 잡는다”는 타이틀을 달았다. 남의 사생활로 장사를 하는 기업형 파파라치 특유의, 건수를 잡았다는 흥분이 행간에 묻어 나왔다.

해당 매체의 주장대로라면 두 사람의 연애가 처음 포착된 건 지난 2월 중순이다. 따지면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지만, 디스패치는 어쨌든 2월과 3월에 걸쳐 있으니 ‘2개월째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단어의 취사선택 속에서 디테일은 사라지고 “2개월째 열애 중. 런던 호텔에서 데이트”라는 키워드들만 남았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연예 가십지들이 그 보도를 받아썼고,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란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청춘 남녀가 호텔에서 2박3일을 보냈으면 답은 뻔한 것이 아니냐”는 댓글부터 시작해 “팬들을 생각했다면 사진이 찍히더라도 조금 덜 공개적인 장소에서 찍혀야 되는 것 아니냐”는 훈계까지. 데이트 장소가 호텔이라는 이유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며 두 사람의 ‘처신’에 대해 품평하는 종류의 댓글들이 난무했다. 사방이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야 남의 눈을 피하고 사진 찍히는 걸 피할 수 있을 것이란 맥락을 고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디스패치는 이렇게 될 것을 몰랐을까? 설마,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디스패치로 대표되는 파파라치형 가십 매체들의 사회적 해악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수지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 좌절을 과장된 형식으로 드러내는 일부 팬들의 태도도 볼썽사나운 건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나라 잃은 사람처럼 대낮부터 폭음을 했노라 고백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상실감을 장문의 글로 표현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어찌나 절절한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도 읽는 줄 알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누군가는 2014년 한국방송 <나는 남자다>에 출연한 수지가 자신의 이상형은 ‘못생긴 남자’라고 이야기했던 장면을 들고 와 비아냥거린다. (바로 한 해 전 에스비에스 <힐링캠프>에서 이상형 월드컵을 했을 때 수지가 숨도 안 쉬고 강동원을 선택했다는 사실 같은 건 모두가 잊어버렸다는 듯 말이다.) 수지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화 <건축학개론>(2012)의 승민(이제훈)이 되어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떠는 모양새가 되었다.

저널리즘의 정도를 지켜야 하는 다른 언론들도 함께 바닥을 보였다. 일부 경제지는 수지의 소속사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하룻밤 사이에 폭락해 주가총액 37억원이 증발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 2월 초 주당 4150원이던 제이와이피 주식은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면서도 꾸준히 주가가 오르는 중이다. 열애설이 보도된 날 잠시 급락하긴 했으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49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지 기자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있을까? 설마. 알면서도 연애설이 보도된 당일 주가총액에서 37억원이 빠진 사실만을 강조해서 보도한 것이다. 자극적일수록 기사는 더 잘 팔릴 테니까.

만 스무살이 된 젊은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먹고 있는 모양새

그들은 수지가 가수로서
전달해왔던 메시지엔
큰 관심이 없었고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수지에게 투사해왔다는 사실을
흉하게 증명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보도의 뒤에는 수지가 연애를 하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마치 ‘수지는 국민 첫사랑 이미지로 주가를 올렸는데, 그런 수지가 다른 사람하고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는 듯. 그러나 수지가 <건축학개론> 속 서연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길 바란 건 대중이지 수지가 아니었다. 2013년 <힐링캠프>에 출연한 수지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섹시한 의상을 입어보기도 하고 진한 메이크업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첫사랑’ 이미지에만 머물러줄 것을 요구하며 의상이나 메이크업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팬들이 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애초에 아티스트가 선보인 이미지의 스펙트럼 중 일부만 강요했던 건 그들이었으면서, 연애설이 터지자 이미지와 실체의 괴리에서 오는 배신감을 호소하는 이 기괴한 팬심이란.

단순히 특정 이미지를 강요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수지가 연애를 하는 순간 상품성이 훼손된다거나 수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식는다는 식의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사람들의 태도 뒤엔, 여성의 성은 보존되었을 때만 가치가 있다는 식의 성관념이 숨어 있다. 여성을 능동적인 성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지켜야 할 성의 객체로 보는 인식 말이다. 미스에이의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은 ‘배드 걸 굿 걸’이고, 그 노래 가사는 여자가 조신하길 바라는 세상에 대고 “셧 업”이라고 외치는 노래였다. 제일 최근 발표된 정규 2집 <허시>(2013)의 첫 곡 ‘놀러 와’는 “마침 아무도 없”으니까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너랑 나랑 우리 둘의 이야기를 만들”지 않겠느냐고 묻는 곡이었으며, 타이틀곡 ‘허시’는 “롤리팝보다 네가 맛있”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가수로서의 수지는, 커리어 내내 무대 위에서 여성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성역할에 대해 노래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을 수놓는 팬들의 투덜거림은, 그들이 수지가 가수로서 전달해왔던 메시지엔 사실 큰 관심이 없었고,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수지에게 투사해왔다는 사실을 흉하게 증명한다.

정리하자. 디스패치는 자신들의 특기인 사생활 캐기를 통해 이제 만난 지 한 달 남짓 된 연인들의 ‘호텔 데이트’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사진으로 기사를 내면 연예인이 부인을 못할 거란 생각에 (디스패치를) 시작했다”(<미디어오늘> ‘잇따른 연예 특종, 탐사보도인가 파파라치인가’, 정철운 기자)는 말처럼, 어떻게 수습도 못하게 남의 사생활을 폭로해놓고선 의기양양해 있는 것이다. 각종 연예매체가 받아쓰기와 어뷰징 기사를 양산하며 사생활 장사에 합류했고, 경제지조차도 제이와이피의 주가가 급락했다는 것을 전하며 ‘37억 증발’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앞세웠다. 올해로 만 스무살이 된 젊은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먹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조신하지 못한 처신’을 손가락질하면서도 관련 기사를 소비하고 퍼뜨리는 네티즌들이 뒤를 따랐다. 가십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옐로저널리즘 산업의 추악함과 여성 연예인의 순결성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뒤틀린 팬심이 그 맨얼굴을 드러냈다.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
디스패치를 비난하는 것은 쉽다. 자신들은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보도만을 한다면서 연예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평하지만, 결국 그들이 파는 것이 ‘남의 사생활’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디스패치의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를 하는 여타 가십매체를 비난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디스패치의 사생활 장사를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간섭하는 풍토 때문임을 자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터뷰마다 연예인들에게 작품 이야기 대신 연애는 하고 있느냐고 묻고, 툭하면 ‘이상형 월드컵’ 같은 걸 들이대며 집착적으로 사생활이나 취향을 캐묻는 미디어의 속성을 당연한 것으로 소비한다. 연예인의 가십에 목이 말라 클릭질에 여념이 없으면서, 정작 연애설이 터져서 읽고 나면 조신하지 못하다는 둥 왜 호텔에서 만났느냐는 둥 손가락질하며 품평을 서슴지 않는 위선이 사생활 장사치들의 배를 불리고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도록 해줬던 건 아닐까. 미스에이의 데뷔곡 ‘배드 걸 굿 걸’의 가사처럼 말이다.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넋을 잃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네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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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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