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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8 20:04 수정 : 2016.01.09 10:23

광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쟤는 왜 혼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걸까. 첫 추격전에 임한 광희를 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문화방송 <무한도전>과 부산 경찰과의 추격전, 모든 게 처음인 광희는 그저 사력을 다해 뛸 뿐이었다. 실외기 사이에서 비를 맞으며 한 시간가량 몸을 구겨넣은 것을 시작으로, 촬영감독을 버려두고 생면부지의 레미콘 기사에게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형사의 눈을 피해 달아나더니, 급기야 지나가던 시민과 옷을 바꿔 입어 자기로 위장시키는 대목쯤 됐을 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로 죄짓고 도주 중인 사람처럼 보이는 처절함. 어찌나 불쌍해 보였는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경찰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광희를 숨겨준 부산 시민은 무심하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보니 제일 안됐더라. 테레비 보니까는. 제일 약해 보이더라고.”

어쩌면 그 한마디는 그날 광희의 행색이나 <무한도전> 입성 이후의 행보가 아니라, 광희의 전체 커리어를 요약하는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안돼 보일 정도의 절박함. 데뷔 후 소속사가 처음으로 잡아준 리얼리티 예능은 다짜고짜 나미비아에 떨궈 놓고는 살아남을 것을 주문하는 에스비에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2011)이었고, 같은 해 참석한 환경의 날 행사에는 한시간 40분 동안 티셔츠 252장을 껴입으며 기네스북 기록을 세우는 것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워야 했다. 광희의 절친인 이준은 광희의 <무한도전> 입성 이후 “목숨을 걸고 하고 있는 게 보인다”고 평했고, 광희와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방어잡이 촬영에 나간 문화방송 <그린실버 고향이 좋다> 최재혁 프로듀서는 “옆에서 봤을 때 안타까울 정도로, 목숨을 걸고”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사람을 웃기러 나온 일터에서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는 사람의 자세란 대체 무엇일까?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 ‘스타제국’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쇼 엠넷 <오피스 리얼리티-제국의 아이들>(2009)을 끼고 데뷔했지만, 회사는 좋은 곡을 얻어올 능력도 그걸 변변하게 프로모션할 능력도 없었다. 비가 심하게 와서 준비한 테이프들이 손상됐다는 이유로 3분짜리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1분9초 분량만 만들어 내보낸 회사인데 뭘 바라겠는가? 결국 팀을 알릴 수 있는 창구는 예능밖에 없었다. 그나마 말주변이 좋았던 광희는 예능에 나갔고, 어떻게든 카메라를 멈춰 세워야 했기에 제 치부를 까발리며 자폭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네 차례 성형을 했으며, 성형 후 누워 있었던 기간을 다 합치면 1년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촉새처럼 빠른 말투에 실어 던진 것이다. 기껏 과거의 자신을 탈피하기 위해 한 성형이었지만, 그 과거를 밝히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광희는 비싼 돈을 들여 예뻐졌으니 자랑해야 할 것 아니냐며 배실배실 웃었다.

그나마 말주변 덕 예능에 나갔고
비싼 돈 들여 예뻐졌으니
자랑해야 할 것 아니냐며
배실배실 웃었다

성형 언급은 반복할수록 시들
특유의 화술도 호불호 갈려
더 올라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
잘해야 본전인 ‘무도 멤버’로 뽑혀
합류 8개월만에
자신이 주인공인 에피소드 갖게 돼

성형 사실을 숨기거나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수습하기 바쁜 연예인만 보다가, 자신의 성형 사실을 공격적으로 휘두르며 같이 나온 다른 연예인들 견적까지 봐주고 있는 광희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뭐 저런 캐릭터가 다 있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건 절박함에서 비롯된 억척스러움이었다. 기껏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반대를 설득해가며 데뷔했는데 그대로 묻히는 것보단, 성형 사실을 밝혀서라도 기회를 잡는 쪽이 나으니까 말이다. 그는 다른 멤버가 혼자 예능에 나와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때 깜짝 게스트로 치고 나와 프로그램에 방점을 찍고 퇴장했고, 진행자가 행여 같이 나온 멤버에게 토크 배분을 안 해준다 싶으면 턱을 치켜들며 치고 나와 공간을 열어줬다. 다른 멤버들이 각자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뒤에도 자신의 질투심 많은 캐릭터를 이용해 은근슬쩍 다른 멤버들의 성취를 언급해가며 팀을 알린 건 광희였다.

말하자면 재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 자체가 재능인 사람인 셈이다. 문제는 유명해진 다음이었다. 광희는 외투 어깨에 잔뜩 ‘뽕’을 집어넣어 남자다운 이미지를 갈구해봤지만, 정작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방송은 교육방송 <최고의 요리비결>과 메이크업 프로그램 케이비에스 더블유 <뷰티바이블>이었다. 대중에게 광희는 멀리서 보며 흠모할 상대가 아니라, 수다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식자재를 다듬고 메이크업 베이스의 유분기에 대해 논하며 같이 옷을 환불받으러 가고 싶은 그런 상대였던 것이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지만 친근함으로 소비됐고,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예능인으로 알려진 예상치 못한 상황. 광희는 유명해진 것에는 성공했지만 본인이 바라던 형식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고, 유명해진 뒤에야 그 인지도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임시완처럼 모두의 인정을 받을 만한 연기력이 있는 것도, 동준처럼 운동을 잘하거나 박형식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으니까. 성형 언급은 반복할수록 충격의 역치가 낮아지며 시들해질 수밖에 없는 소재였고, 매번 치고 나오며 제 분량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화술도 호불호가 갈렸기에 그것만으로 오래갈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 유리몸에 가까운 체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데뷔 5년차가 되었을 무렵 그는 이렇게 자평했다. “한때 핫했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내려갔다. 걷잡을 수 없이. 대세에서 내려와서 내 할 일 열심히 하고 있다.”

1년간 누워 있으며 얼굴을 고친 절박함으로 연예인이 됐고, 그 사실을 만방에 떠드는 처절함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목표한 지점까지 올라 더 올라갈 곳이 마땅치 않아 보이는 상황이라면 어쩌면 좋을까. 그쯤에서 내려올 게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더 높은 목표를 찾아 퇴로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 마침 그 순간 광희에게 <무한도전>이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잘해봐야 욕을 안 먹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 자명해 보이는 <무한도전> 여섯번째 멤버 자리에 뽑힌 것이다. 일단 목표 지점이 생기자 광희는 다시 억척스러워졌다. 자신이 출연하던 동시간대 프로그램 에스비에스 <스타킹>에 양해를 구하고 <무한도전>에 얼굴을 비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 나가서는 자신을 식스맨으로 뽑아달라는 내용으로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어필했다.

우여곡절 끝에 <무한도전>에 들어와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의식해야 했다. 5년 가까이 정형돈에게 ‘웃기지 않으니 하차하라’고 주문했던, 예능 역사상 가장 가혹한 팬덤을 보유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광희는 자신이 제출한 ‘<무한도전> 엑스포’ 기획안이 현실화되었을 때에도 제대로 웃지 못했고, 발연기 탓에 더빙 특집에서 단역만 얻어 왔을 때에는 대사 하나짜리 캐릭터를 몇 시간씩 분석해가며 톤을 잡아갔다. 그렇게 도망갈 곳 없는 사지에 자신을 던지고는 안쓰러울 정도의 인정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곤 합류 8개월 만에 마침내 자신이 주인공인 에피소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특유의 절박함을 알아본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모든 게임이 끝난 뒤, 광희는 이번 추격전에 목숨을 걸고 임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추격전 소식을 알리는 기사 밑에 달린 네티즌 댓글 중 “광희야, 마지막 기회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웃으며 말할 수 있었지만, 바로 그 순간이 광희에겐 가장 절박한 성장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아이돌치고 이른 나이는 아니었던 스물세살 데뷔부터, 웃으며 제 치부를 광고해야 했던 토크쇼, 그리고 ‘하차 서명운동’까지 감내해야 했던 <무한도전> 합류까지, 광희에게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던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마다 광희는 보는 이들이 다 민망할 정도로 처절하게 제 앞에 놓인 벽을 기어올라왔다. 연말 시상식에선 꽃다발이 모자라 멤버들 중 유일하게 빈손으로 무대에 있었지만, 괜찮다. 특유의 절박함으로 <무한도전> 멤버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한 것이, 세상 그 어떤 꽃다발보다도 의미가 있었을 테니.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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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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