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돌이켜보면 한국 대중음악계에 ‘톰보이’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엠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이선희와 이상은을 경험한 나라치곤 폭력적이기 짝이 없다. 걸그룹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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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한국 대중음악계에 ‘톰보이’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엠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이선희와 이상은을 경험한 나라치곤 폭력적이기 짝이 없다. 걸그룹 f(x)(에프엑스)의 멤버인 엠버.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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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라는 편견
솔로곡 ‘뷰티풀’ ‘보더스’서
자전적인 이야기 풀어내며
‘나를 짓누르는 압박에 맞서’
세상 손가락질에 당당해져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그래도 눈초리를 덜 받는 편이다. 대중 앞에서 어떠한 역할 모델이 되기를 강요받는 연예인들의 경우엔 세상의 시선을 피하는 게 더 어렵다. f(x)(에프엑스)의 ‘엠버’는 동시대 한국 걸그룹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톰보이(중성적이고 활달한 여성) 캐릭터로 많은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지만, 동시에 데뷔하자마자 그를 ‘남장 여자’라는 키워드로 수식하는 사람들과도 마주해야 했다. 2009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서 ‘왕비호’ 캐릭터로 활동하던 윤형빈은 엠버를 두고 “걸그룹이라더니 남자가 있다. 하리수 같은 애”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방송 후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엠버와 하리수 모두에게 결례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그런 농담이 피디의 사전 검사에서 걸러지지도 편집 과정에서 탈락하지도 않았다는 건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엠버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처음 등장한 톰보이 캐릭터인 것도 아니었다. 통기타와 포크, 청바지의 시대였던 1970년대 양희은은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기타를 쳤고, 뮤지컬에서 치마를 입은 것이 언론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바지를 고수했던 이선희는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담다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이상은 또한 큰 키와 짧은 머리, 청바지 차림으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너무 오랜 시간 연약하거나 앙증맞은 이미지로 대중을 상대하는 걸그룹들에만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엠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이선희와 이상은을 경험한 나라치곤 폭력적이기 짝이 없었다. 물론 1980년대는 세계적으로 톰보이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시대가 지나 유행이 바뀌었다고 해서 타인의 취향이나 옷차림 따위를 지적하며 ‘모범적인’ 여성상 혹은 남성상 안에 상대를 가두려 하는 시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엠버는 이런 세상의 편견에 꾸준히 반문해왔다. 2015년 2월 발표한 솔로 앨범 <뷰티풀>에 수록된 타이틀곡 ‘셰이크 댓 브라스’의 뮤직비디오 또한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놀고 농구를 즐기는 모습을 담았으며, 동명의 자작곡 ‘뷰티풀’에서는 “날카로운 말들이 내 맘을 깊이 베”어 세상은 “좁은 새장 같”지만, 자신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될 것이며, 자신이 자신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노래했다. 같은 해 7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는 메시지가 한결 더 선명해졌다. “전 여자와 남자가 어떤 한 가지 외양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이란 모든 형태와 크기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요. 만약 우리가 다 같은 멜로디로 노래한다면 어떻게 하모니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모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계속 싫어할 테지만, 자기 면전에서 자신을 모독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 한가지 분명히 해 둬야겠다는 말로 시작한 이 정중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제나 자기 자신이 되세요. 자기 자신에게 진정 진실하게 사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지난 3월24일 공개된 솔로 음원 ‘보더스’(경계)에서도 그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1절에서 엠버는 세상의 손가락질에 괴로워한다. “여기 모두가 날 바라보며 고개를 젓네. 내가 뭐가 문제인 걸까… (중략) 저들이 말하는 ‘완벽’에 가닿을 수 있다면 뭐든 할 거야. 그럼 어쩌면 내가 속할 곳도 찾을 수 있겠지.” 그러나 바로 다음 소절에서부터, 그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고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충분히 강하다면, 눈을 발치에 두고 묵묵히 걸어갈 텐데. 왜냐하면 엄마가 말했거든. 경계를 넘을 때 궁지에 몰리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똑바로 서서 너의 길을 위해 싸우라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 나를 짓누르는 압박에 맞서서.” 그러고는 세상을 향해 말한다. “흉내내지 않을 거야.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앞에 있으니까.” 솔로로 곡을 발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엠버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세상의 부당한 편견에 맞서고 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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