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방송인 정형돈
지난해 11월 건강을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던 정형돈. 10월5일 엠비시에브리원 <주간아이돌>로 복귀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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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컸던 <무한도전> 포기하자
“아프다면서” “꾀병이네” 악플
언론도 ‘아픈 거 맞냐?’ 편견 강요 타인의 고통도 소비하려는 욕구
슬픔의 ‘진정성’ 끊임없이 의심
“그는 쇼 비즈니즈 종사자일 뿐
그의 삶 자체가 쇼일 순 없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선 이런 일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목격된다. 가족이 실종됐다며 찾는 걸 도와 달라고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인터넷에 공개한 한 여성은, 모르는 상대로부터 “진정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며 훈계를 당했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자기소개 문구가 평상시처럼 발랄한 상태라는 이유에서였다. 가족이 실종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방에 도움을 요청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에게, 그 모든 노력 이전에 잠시 짬을 내어 ‘내 프로필 사진이랑 자기소개 문구가 뭐였더라’를 먼저 확인하고는 바꿨어야 한다고 훈계하는 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일까?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자신이 성폭행당한 경험을 증언하고 고발해온 여성은 “강간 피해 여성이 그 경험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닐 리 없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라는 모멸적인 언사를 듣는다. 아픈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고통스러운 경험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멀쩡해 보이는데,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며 진정성을 의심당한다. 이럴 거면 한국어 회화에서 “힘드시겠지만 평소처럼 굳건하게 버티셔야 한다”는 문장은 없애는 편이 낫지 않나. 굳건하게 버티면 거짓말쟁이라고 모욕당하는 세상인데.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나는 여기에서 타인의 고통조차 소비할 대상으로 삼는 소비주의와 세상에 대한 냉소를 본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멘탈리티 중 하나로 ‘냉소주의’를 지적하는 정치평론가 김민하의 말을 인용하자면, “현대의 인터넷-대중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속는 것’이다. (중략) 예를 들면 <먹거리 엑스 파일>은 어떤가? <먹거리 엑스 파일>의 세계관 속에서 (착한 식당을 제외한) 모든 식당은 ‘속인다’. 모든 식당이 속인다는 건 곧 모든 상품과 생산자가 소비자인 나를 속인다는 것과 같다. 구체적으로는 100원짜리를 1000원에 파는 거다. 속는 놈은 졸지에 100원짜리를 못 알아본 무능한 자가 된다. 서열 만들기와 타락한 능력주의(박권일)를 내면화한 이 세계에선 속는 건 무능한 거고 승부에서 지는 것이며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거다”(팀블로그 ‘파벨라’ 기고 글 “욱일기에 대한 생각”). 이 논리 구조를 정형돈의 사례에 대입해보자. 진정성을 가지고 대중을 대하는 몇몇을 제외한 연예인들은 죄다 대중을 기만한다. 정형돈은 ‘안 아프면서 아프다고’ 자신을 속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가 <무한도전>을 하차하는 걸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은 기만당하는 것이고 속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여기에 공감을 하는 것은 내 소중한 감정의 자원을 지출하는 꼴이 되고, 그것은 무능한 일이다. 슬픔의 기대치도 만족시켜야 하는가? 여기에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하려는 심리가 결합한다. ‘나’는 상대의 거대한 슬픔에 압도되어 함께 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함께 울고 공감하는 것으로 나의 선량함과 공감능력을 증거할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정작 고통의 당사자인 상대가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슬퍼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엄청난 기대를 하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기대했던 것만큼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이 나오지 않아 실망한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 관객처럼, 타인의 슬픔이 제 기대치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면 바로 실망하고는 앞서 인용한 것처럼 ‘속지 않기 위한’ 비난에 동참한다. 이 지경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의 삶을 저울질해 감정의 순도를 감별하는 판관이 아니다. 타인의 삶은 내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가 아니며 우리 또한 관객이 아니다.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 중인 정형돈의 삶 또한 그렇다. 너무 많은 언론이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제값 주고 구해온 상품인 것처럼 팔아 대는 통에 많이들 잊고 있는 것이지만, 그는 쇼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인 것이지 그의 삶 자체가 쇼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정형돈의 원활한 회복과 활동을, 그리고 합당한 위로와 존중이 필요한 모든 이들의 마음의 평안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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