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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4 20:04 수정 : 2016.10.14 21:21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방송인·가수 하하

“난 뭐든지 해야 하고, 욕먹어도 해야 해요.” 하하는 그렇게 예능인으로 가수로 살아남았다. 연합뉴스

21세기가 됐다는 설렘에 다들 들떴던 걸까.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중반의 예능은 모든 것이 조금씩 과잉이었다. 에스비에스(SBS) <엑스맨>을 가만히 떠올려 보자.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댄스 신고식부터 하고 가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 춤추고 있는 연예인의 헤어스타일은 아주 높은 확률로 울프컷이었고, 매주 ‘춤신춤왕’이나 ‘댄스지존’, ‘섹시도발’ 같은 자막들이 큼지막하게 날아와 화면에 박히곤 했다. 자막만 호들갑인 게 아니라 리액션 또한 호들갑스러울수록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때라, 허리를 뒤로 젖혀가며 자지러지듯 웃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물개박수를 치는 출연자들일수록 ‘리액션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자잘한 설정들은 또 왜 그렇게 많았는지, 멤버들 사이에는 라이벌, 조력자, 앙숙, 러브 라인 따위의 설정이 빼곡해서 매주 비슷한 그림으로 반복됐다.

그리고 그 시절의 한가운데엔 늘 하하가 있었다. 그는 <엑스맨>에선 박명수와 김종국과 함께 춤을 추며 ‘하명국’을 결성했고, 에스비에스 <야심만만>에선 무명시절 자신이 겪은 고생담을 과시하듯 늘어놓았다. 시도 때도 없이 여자 연예인에게 들이대며 자신을 어필하는가 하면, 자신이 본 영화 속 멋있어 보이는 캐릭터 이름을 죄다 가져다 붙인 끝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를 연상시키는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소제 쏘냐도르 스파르타 잭스페로우 가르시아’라는 정체불명의 별명을 만들어 밀었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는 멤버들의 연애사와 같은 내밀한 사생활을 자기 멋대로 발설해 쇼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멤버였고, 제 몸을 연신 쓰다듬으며 어린아이 말투로 ‘나는 내가 너무 좋다’고 말할 때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자기애로 충만할까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콘셉트도 어쩌면 저렇게 잡았는지, 어린 내 눈에 그는 언제나 오버페이스를 해가며 상대가 불편해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으로 보였다.

“비난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사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 모든 게 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새로운 그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걸. 하하는 자신이 직접 시청자를 웃기기보단 동료의 농담에 있는 힘껏 웃어주는 것으로 웃음의 크기를 키우는 사람이었고, 해서 때로는 가만히 두면 자연 소멸했을 박명수의 거성체조 같은 걸 무리수를 둬가며 받아줬다. 동료가 안 웃긴 농담을 늘어놓다가 끝내 그만둬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이야기가 늘어지기라도 하면, 하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화면에 난입해 발로 엉덩이를 걷어찼다. 일견 무례하고 위험해 보이는 그 행동 덕분에 상대는 농담을 그만둘 퇴로를 찾았고, 상황 자체가 코믹해졌으니 장면 또한 어떻게든 편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하는 잠깐 스쳐갈 만한 1회분짜리 농담 소재인 정형돈과의 어색한 사이를 얄미울 정도로 계속 강조해 결국 ‘빨리 친해지길 바래’라는 한 회분짜리 에피소드를 만들었고, 죽마고우인 노홍철과는 열등감을 느끼는 자존심 센 어린아이 캐릭터를 밀어붙인 끝에 ‘하하 대 홍철’ 특집을 만들었다. 박명수나 노홍철이 노골적인 악역이나 광인 캐릭터로 주인공이 될 때, 하하는 치졸하고 유치한 캐릭터로 그림을 흔들고 사적인 관계를 쇼의 세계관 안으로 슬그머니 포섭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태호 피디가 말한 것처럼, 그는 “비난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궂은일은 보통 눈에 잘 안 보이는 법, “비난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단 조력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하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밉상이 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고, 그 탓에 언젠가부터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초대된 잭 블랙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질척거렸다가 진상이란 욕을 먹었고, 정준하를 등 떠밀어 엠넷 <쇼미 더 머니>에 보내자 왜 하기 곤란한 걸 억지로 시키느냐며 욕을 먹었다. 에스비에스 <런닝맨>에서 결혼하기 전 여자 게스트들에게 추파를 던지면 추파를 던진다고 욕을 먹었고, 결혼 후 콘셉트를 뒤집어 게스트로 만난 한효주를 대놓고 박대하자 게스트로 모셔놓고 뭐 하냐는 욕을 먹었다. “어떻게든 1주일 안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대와 재미를 심어줘야 하는 프로그램이죠. 난 뭐든지 해야 하고, 욕먹어도 해야 해요.” 올해 초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하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에 대해 이야기했다.

갖은 ‘타박’에도 레게에 도전
자메이카 뮤비차트 1위 등극
과잉 자아·어린이 캐릭터 탓
국내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

무례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10년 넘게 예능판에서 제몫
“비난에도 살아남는 예능인
그의 음악성도 살아남을 것”

호오가 극과 극으로 나뉘어도 예능에선 어떻게든 제 몫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쌓아온 가벼운 이미지가 그의 본업인 가수 활동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면 그건 문제였다. 음악성으로 이렇다 할 인정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늘 본업은 가수라고 이야기해온 하하에게, 음악을 하는 것까지 놀림거리가 되는 건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능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뒤 하하는 과거 자신과 함께 그룹 지키리로 데뷔했던 친구 타우의 앨범을 제작했다. 제 유명세로 친구의 음악활동에 활로를 터주려던 시도는 진지했지만, 앨범은 개성이 없다는 혹평을 들었고 한국방송에선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문화방송에선 아예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 2012년 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의 파업은 170일가량 진행된 사상 최장기간 파업이었고, 자연스레 그가 음반을 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잊혀 농담거리가 됐다.

“대중들이 헷갈리는 것일 뿐”

상황이 이랬으니, 그가 한국 레게의 대표주자 스컬과 함께 팀을 이뤄 레게 음악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에도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레게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곳도 예능이었으니, 그 모든 게 예능인 하하 캐릭터의 연장선상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스컬이 방송에서 “하하는 나보다 더 진지하게 레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명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팬 사인회에서 하하를 만난 팬은 대놓고 “제발 스컬을 놓아 달라”고 말했고, 나름 뮤지션과 뮤지션의 만남인 스컬 앤 하하는 코미디언과 가수의 조합인 유브이(UV)나 형돈이와 대준이 같은 팀들과 비교되곤 했다. “(내가 예능인인지 가수인지) 대중들이 헷갈리는 거지 나는 헷갈리지 않는다. 나는 원래 모태가수다”라고 이야기하자 네티즌들은 “모태가수가 아니라 못해가수겠지”라는 댓글로 응수했다. 그래도 하하는 꾸준히 스컬과 작업을 하고 공연을 다녔다. 마치 예능에서 “욕먹어도 뭐든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음악에서도 그는 욕먹는 걸 감수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했다. 스컬과 같이 팀을 유지해야 할 명분이 없을 만큼 못한다는 비판 앞에 명분이 생길 때까지 하겠다고 말하며.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궂은일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 진심이나 노력 같은 걸 봐 달라는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인정은 엉뚱한 곳에서 먼저 받았다. 예능인 하하에 대한 사전정보가 거의 없는 동네, 그래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자메이카에서 뮤직비디오 차트 1위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물론 이 소식에도 여전히 국내 반응은 시큰둥하다. 피처링 해준 스티븐 말리가 레게의 전설 밥 말리의 아들이니까 사람들이 들어준 거겠지. 스컬이 실력이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레게의 본고장인 자메이카에서 1위를 하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에도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언제쯤 하하가 음악성으로 개운하게 인정받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하하는 욕을 먹더라도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무작정 뭐든 해보는 사람이고, 그런 자세로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뚫고 치열한 예능의 한복판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다. 하하가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한 이들에겐 안 좋은 소식이겠지만, 보통 그런 사람은 어지간해선 이기기 쉽지 않다. 상대가 세간의 비웃음이든 시간이든 뭐든 간에.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연재 4년차인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 명 한 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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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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