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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9 14:22 수정 : 2018.05.19 14:55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진상조사위원회의 조능희 위원장(맨 왼쪽)이 16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전참시 어묵 사태’ 조사결과를 보고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진상조사위원회의 조능희 위원장(맨 왼쪽)이 16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어묵 먹방 장면에 세월호 참사 속보 영상을 끼워 넣어 논란을 빚은 <전지적 참견 시점>에 대한 문화방송 ‘전참시’ 진상조사위의 1차 조사 결과는 한심할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다. 뻔히 예상했던 결론이, 전혀 예상치 못할 만큼 안 좋은 방식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아직 조사 결과를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이렇다. 제작진 중 고의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모독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해당 장면을 편집한 조연출은 지난 몇 년 사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지에서 어묵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독하는 상징적 의미로 악용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세월호 참사 속보라는 맥락만 지우면 예능 프로그램에 활용해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에 앵커 등 뒤로 보이는 세월호 사진을 블러 처리해서 사용했다. 말하자면 지상파 방송 사상 최악의 방송사고는, 불순한 의도는 하나도 없었던 단순 부주의와 실수의 조합이었다는 이야기가 1차 조사의 결론이다.

일베 찾느라 시간 허비

많은 사람들이 조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항의하고 있지만, 아마 방송연예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 중 이와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으리라. 처음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방송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세월호 참사 속보 영상을 영상자료로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자료가 세월호 관련 영상인 줄 알면서도 편집하고 자막을 입힌 사람은 누구이며, 결과물을 최종 검수해야 했던 이들은 왜 그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조사한 뒤 그 책임을 물어 징계하는 것. 제대로 사과하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어떤 재발 방지책을 도입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 그런데 문화방송 전참시 진상조사위는 다른 방향을 기웃거렸다. 제작진 중 선명한 악의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인, 사악한 일베 같은 자가 과연 누구인지 찾는 것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어디에다가 과시하듯 인증 글이라도 쓴 게 아닌 이상, 제작진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모욕하려는 악의를 지녔느냐 아니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사람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무슨 수로 확인할 것인가? 게다가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모욕은 벌어진 이후다. 진짜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고 한들 모욕이 덜해지기라도 하나? 진짜 중요한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과 향후 대처 방안에 대한 입장표명에 힘을 쏟는 대신 책임을 선명하게 묻기 좋은 악당 하나를 찾는 데 골몰했으니, 조사 결과 발표의 헤드라인이 그 모양이 된 게다. “저희도 찾아봤지만 일베는 없었습니다”라는 허망한 메시지만 부각되는 꼴사나움이란. “조사보고서에 누가 잘못했는지가 안 나온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은 심영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의 말은, 잘못 자체에 주목한 게 아니라 잘못 뒤의 의도를 발견하려 시간을 허비하느라 책임소재조차 못 가린 문화방송에 대한 질책이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문화방송도 눈치는 챈 것 같다. 최승호 사장이 페이스북 게시물에 적은 것처럼 “타인의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 있는 영상을 흐리게 처리해 재미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문제”다. 그런데 그건 <전지적 참견 시점>뿐 아니라 일베에서 패륜적인 유행어와 합성사진들을 만들어 유통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명백하게 누군가를 모독하고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냥 그게 웃긴다고 생각하며 유행어를 사용하고 합성사진을 만들어 올린다. 더 자극적이고 더 뒤틀린 글과 사진으로 게시물을 꾸밀수록 추천을 받기 용이하고, 그렇게 추천을 받아야 베스트 게시물에 등극하니까. 베스트 게시물에 등극할 수 있다면 소재야 어떻든 아무래도 괜찮다는 심리야말로 일베적 사고방식의 주요 요소다. 어묵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일베 유저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다.

“일베는 없었다”
“어묵의 의미 몰랐다”
납득 불가 조사결과
책임 소재조차 못 가려

의도 발견하려 시간 허비
잘못 자체에 주목해야
단순 블러처리 생각한 무감수성
결과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상처

결과주의적 태도는 이미 일베적

그러니 평소에 일베에 접속했는지 아닌지 여부나,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겠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느냐 여부 같은 건 부차적인 문제다. 세월호 유가족을 변호해온 오세범 변호사는 “어묵을 사용한 것이 세월호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인 줄 몰랐다는 것에 더 충격적이었다. 사회적으로 공감을 못하고 있다. 어묵이 아니라 ‘이영자 만두 충격 고백’이었다면 이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전참시’ 어묵 화면…세월호 조롱 의도는 없었으나 윤리의식 결여”, <한겨레>, 2018년 5월16일, 문현숙 선임기자)이라고 말했지만, 설령 그게 만두였다고 해도 제작진의 윤리는 도마 위에 올랐으리라. ‘웃기는’ 결과를 만들 수만 있다면 민감한 소재를 가져와 적당히 블러 처리만 하고 사용해도 아무러면 어떠냐는 결과주의적 태도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일베적이고, 그런 태도로 만든 콘텐츠는 어묵이 아니라 그 어떤 음식을 가져다 붙여도 충분히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삽질은 어쩌면 “나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서 출발한 건지도 모른다. 조금씩 일베적인 사고방식을 나눠 가진 이들이, 명확히 보이는 일베 한 명을 찾아내어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뒤에 숨어 “나는 그래도 쟤보단 낫다”는 알리바이를 획득하는 게으른 본능 말이다. 그랬으니 이미 충분히 모욕을 겪은 4·16 가족협의회 쪽에 “해당 프로그램 PD들도 사내 정상화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등 평판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일베는 없고 우린 또 죽었다”…‘전참시’ 사태 결말, <중앙일보> 2018년 5월16일, 채혜선 기자)는 말을 했던 거겠지. 일베적인 화면이 송출됐지만, 그래도 일베를 하거나 일베의 사상을 추종할 만큼 악의를 지닌 사람들은 아니라는 건 짚어두고 싶었던 게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베의 사상을 따르지 않더라도 이미 일베적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다면, 해서 의도야 어쨌든 일베적인 화면이 송출됐다면, 일베보다 나은 게 대체 뭔가?

영화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가 속한 조직인 ‘쉴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할 만한 인물들을 사전에 포착해 동시에 정밀타격할 수 있는 압도적인 신무기 시스템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개발한다. 벌은 죄를 지은 다음에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캡틴은 이 신무기가 영 탐탁지 않다. 그러던 와중 쉴드 조직 내에 잠입한 악당 조직 ‘하이드라’가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탈취해 하이드라를 위협할 만한 인물들을 모두 죽이려 들자, 쉴드의 수장인 퓨리(새뮤얼 잭슨)는 캡틴에게 하이드라 조직원들을 제압하고 파괴되지 않은 무기는 가능한 한 구해 올 것을 요구한다. 캡틴은 단호히 말한다. “구하긴 뭘 구해요! 쉴드도 함께 끝장낼 겁니다.” 퓨리는 쉴드는 아무 잘못이 없음을 강변하지만, 캡틴의 반론은 가을 서리처럼 차갑다. “쉴드도 이미 넘어갔잖아요. 하이드라가 코앞에서 세를 불리는 동안 아무도 몰랐잖습니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죄를 짓기도 전에 먼저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는 쉴드의 사고방식 자체가 하이드라와 다를 것이 없어졌고, 그랬기에 하이드라가 쉴드를 장악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은 것이다.

캡틴이 옳다. 자신도 모르게 하이드라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소속이 하이드라가 아니고 이념이 하이드라가 아니더라도 이미 넘어간 거다. 문화방송이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조사를 했다면 누가 사악한 일베인지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첫 단추를 괴상하게 끼운 탓에 아무도 조사 결과를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불행한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임자들이 어떤 징계를 받을지, 재발 방지 대책으로는 무엇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문화방송은 대체 시청자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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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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