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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프로듀서인 윤종신(오른쪽)과 <프로듀스48> 파이널리스트 출신 다케우치 미유. 윤종신은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에 다케우치 미유와 작업한 음원 발표를 연기했다고 최근 밝혔다. 윤종신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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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윤종신-일본 연습생 작업한 음원
악화된 한-일 관계 탓 발표 연기
신중론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란 이유만으로 반대 많아
정치적 목적 공격하는 세력 거부
민간·문화교류 확대해 이해 넓혀야
소녀상 지키는 일본 시민들처럼
일본 선수 축하한 한국 관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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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프로듀서인 윤종신(오른쪽)과 <프로듀스48> 파이널리스트 출신 다케우치 미유. 윤종신은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에 다케우치 미유와 작업한 음원 발표를 연기했다고 최근 밝혔다. 윤종신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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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이 늦춰졌습니다.” 7월 중순 무렵이었다. 내가 영화 칼럼을 기고하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웹매거진 <월간 윤종신>(가수 윤종신이 매월 한 곡의 싱글을 발표하는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과 연계되어 운영되는 매체)의 담당 에디터는 내게 평소보다 한참 늦어진 마감일을 제시했다. 싱글 앨범 발표 시점에 맞추어 같이 발행되는 매거진인 탓에 마감 기한이 다소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예삿일이지만, 그런 것치고도 7월호 마감일은 유독 늦었다. 의아하다고 생각할 무렵 에디터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원래 이번달 가창자가 일본인 연습생이었는데, 녹음까지 마친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바람에 발매가 무기한 연기됐어요.”
윤종신이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엠넷(Mnet) <프로듀스48> 파이널리스트 출신 다케우치 미유의 사연이었다. 완성 단계의 곡을 만들어 놓고도 부랴부랴 새로운 싱글을 준비해야 했을 ‘월간 윤종신’ 쪽도 당혹스러웠겠지만, 자기 잘못도 아닌 이유로 데뷔가 연기된 다케우치 미유의 심정을 생각하니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짐작건대 이런 이유로 데뷔가 연기된 일본 출신 연습생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반전사상 <도라에몽>도 개봉 연기
‘아베 정권은 미워하되 일본인 전체를 미워하지는 말자’는 신중론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마치 미스틱엔터테인먼트가 지나치게 몸을 사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윤종신의 글이 게재된 소셜미디어 페이지나 포털 사이트 뉴스, 그 소식을 퍼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댓글난을 보면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양국 간 민간 차원의 교류는 이어가야 한다”라거나 “한국 국민들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한국 문화를 사랑해 한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은 환영한다” 같은 의견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 결정이 내려진 7월 중순 무렵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소식엔 한국과 일본의 많은 시민이 분개했지만, 7월 중순 무렵 한국의 한 장르영화 영화제가 “(해당 장르의) 대표 격 작품이자 아시아권의 상징적 작품”이란 이유로 영화제 포스터 테마로도 사용되었던 일본 영화 <자토이치> 시리즈 특별전 섹션을 통으로 취소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명 없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외압에 시달릴 때 수많은 영화인이 “영화제는 정치적, 경제적 잣대가 아니라 오로지 예술적 완성도로 영화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게 무색해졌다.
지금 시점에 와서 “한국인들의 집단지성을 믿고 발매하지 그랬냐”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다케우치 미유를 향한 온정적인 반응이 비교적 많은 건, 윤종신이 사후에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설명 없이 예정대로 일단 7월 중에 싱글을 발매했다고 가정해보자. 반응이 지금처럼 이렇게 우호적이었을까? 응원하는 댓글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그 댓글이 이유 없이 비난하는 목소리들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 트와이스의 사나와 모모, 미나 등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가수들을 퇴출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의견이랍시고 인터넷을 떠돌던 시점이었으니까.
“굳이 이런 시기에 한국에 돈 벌려고 온 일본인 연습생의 노래를 발표했어야 했나. 똑같이 열심히 노력하는 한국인 연습생도 많을 텐데” 같은 반응이 없었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었으리라. 단순히 곡이 평소보다 덜 팔리고 마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유로 아티스트가 비난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집단지성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작품 속에 전쟁에 대한 혐오와 반전사상을 꾸준히 담아왔던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시리즈의 신작이 무기한 개봉 연기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도라에몽 시리즈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드는 시간은 길지만, 극장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이 시국에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니”라고 말하는 데 드는 시간은 짧으니까.
교류 끊기면 극우세력 더 활개
저건 7월 중순의 일이고 지금은 8월이니, 상황이 좀 많이 달라졌을까? 신중론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긴 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대부분의 영화제는 예정된 일본 영화 프로그램들을 변경 없이 추진하기로 했고, 한국에 진출한 일본 출신 가수들도 조심스레 활동을 시작했다. 악플을 다는 네티즌보다 응원하는 네티즌의 수가 많은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교류를 반대하는 분위기는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 8월6일 서울 광진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과의 교류를 보이콧한답시고 시민단체 ‘일본 희망연대’의 방문 일정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해당 단체는 양국 간의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교류를 꾸준히 추진해온 비영리단체다. 생협 활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모인 ‘희망연대’는 한·일 양국의 노동교육 교류를 추진했고, 한국의 촛불혁명과 민주주의를 꾸준히 연구해 관련 연구서적을 발간했으며, 일본 시민사회가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해온 단체다. 일본이 역사교육이 부족해 일본 내 양심세력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한탄하면 뭐 하나. 정작 우리부터 단순히 ‘일본’이라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 아베 정권의 폭주를 비판하고 그를 견제하려 노력하는 일본인들과의 교류조차 거절하는데, 그걸 자랑이랍시고 보도자료를 내고 있는데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아니 오히려 이런 때이기에 양국 간의 민간 차원의 교류, 문화적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 대중문화 대일수출량이 수입량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돈을 쓰기 때문도 아니다. 상황이 반대였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교류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교류가 끊길수록 양국 국민 간의 오해와 불신이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정치 차원에서 생긴 갈등은 물밑협상이나 출구전략 논의 등 다양한 옵션을 통해 추후에 풀어내는 일이 가능할지 몰라도,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적대감과 증오는 정부 차원의 갈등이 해소된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정책과 달라서 하루아침에 철회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양국 간의 이해와 공감을 돕던 수많은 민간·문화 교류가 위축되면 위축될수록, 일본 시민들은 평범한 한국 시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기회를, 한국 시민들은 평범한 일본 시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기회를 잃는다. 그럴수록 반한감정을 조장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추구하는 일본 극우세력이나, 이 기회를 노려 자신의 입지를 다져보겠다고 서울의 심장부에 ‘노 재팬’ 깃발을 달았다가 핀잔을 들은 서울 중구 서양호 구청장 같은 이들이 주목받기 쉬운 토양이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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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서울 태평로 거리에서 중구청 관계자들이, 일본이 수출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한 조처의 항의 뜻으로 내걸었던 ‘노 보이콧 재팬(NO 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떼어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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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교류가 지속되려면, 양국의 시민들이 더 앞장서서 단순히 ‘일본/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제지시키고, 서로에게 호의를 담은 인사를 건네는 성숙함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일본에 전시 중인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정계와 극우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자, 적지 않은 일본 시민이 항의 집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킴이’를 자처하며 소녀상을 지키겠노라 나선 것처럼. 광주국제수영선수권 대회를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에게 먼저 일본 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인사를 건네 눈물을 고이게 한 어느 이름 모를 한국 관중처럼.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화를 멈춰선 안 된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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