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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7 10:44 수정 : 2019.12.08 15:12

외주 스태프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배우 강지환(가운데)이 지난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나왔다. 연합뉴스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성폭행 유죄’ 배우 강지환 집행유예 논란

배우 강지환, 스태프 성폭행
‘1심 집행유예’로 풀려나
감경요소 반영, 가중요소 외면

피해자에 “합의금 노려” 악플
정준영·최종훈은 억울함 호소
성범죄에 관대한 풍토 문제

외주 스태프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배우 강지환(가운데)이 지난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나왔다. 연합뉴스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하고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배우 강지환에게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재판장 최창훈)가 지난 5일 선고한 형량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다.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더구나 “성범죄 특성상 피해 여성들의 피해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강씨는 피해 여성들의 상처가 아물기를 생이 끝날 때까지 참회하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내린 형량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법원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경우 형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애초에 검찰이 강지환에게 구형한 형량은 3년이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법원의 선고 형량이 6개월이나 줄어든 것을 도끼눈으로 본다면, 내가 사안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걸까? 법원은 사회봉사 120시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 제한 3년을 함께 선고했다지만, 그걸 형벌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3년이라는 구형량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진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우리 법원이 정해 놓은 일반강간죄의 기본 형량(양형 기준)은 2년6개월에서 5년 사이다. 감경되었을 경우 1년6개월에서 3년, 가중되었을 경우에는 4년에서 7년을 선고할 수 있다. 아마도 강지환 쪽이 결심공판 당일 제출한 피해자들과의 합의서와 처벌 불원서,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가 없다는 점과 꾸준히 반성의 의사를 보였다는 점 등이 감경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중 요소로 볼 만한 점들은 없었을까? 우리 법원의 양형 기준에는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하여 강간한 경우’나,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경우에는 가중 요소를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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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시달리는 피해자

잠깐, 사건 당시로 돌아가 보자. 강지환은 2019년 7월9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스태프 회식을 열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피해자들에게 “너희는 짐이 많으니 콜택시를 불러주겠다”며 만류했는데, 평소 일정이 바쁘거나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경우 스태프들이 그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기에 피해자들도 큰 의심 없이 잠을 청했다. 특정 통신사 외에는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아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하기도 어려운 외진 자신의 집에 스태프들을 부르고 귀가를 만류했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게 ‘계획적 범죄’를 위한 포석이었음을 증명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음주를 한 건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한 것으로, 평소 쌓아 둔 스태프들과의 신뢰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자신의 집에 재운 건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3년이라는 구형량부터 지나치게 피고인에게 유리해 보이는 건, 단순히 내가 법을 잘 몰라서 그런 걸까?

피해자들은 이미 소문이 퍼진 탓에 동종업계 안에서 취업해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 더는 불가능해졌고, 성범죄 특성상 가해자와 합의하는 것 외에는 그 피해를 보전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에 합의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법원은 애초에 3년으로 구형된 형량에서 6개월을 깎아낸 뒤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일부 네티즌들은 피해자들이 합의금을 노린 게 아니냐는 악플을 단다. “생을 다할 때까지 참회하는 것이 맞다”는 법원의 말은 묵직하지만, 가해자는 사회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악플에 시달린다.

법체계 전체가 남성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그 체계 안에서 세부적인 적용조차 유리하게 된다는 의심은, 아마도 합리적일 것이다. <한국방송>(KBS)이 입수한 가수 정준영의 집단 성폭행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정준영은 2015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 사이 서로 다른 단체 대화방 5곳, 개인 대화방 3곳에서 모두 14명에게 불법촬영 영상을 유포했다. 피해자는 10명 안팎에 이르는데, 정준영은 많게는 하루에 세 차례나 불법촬영 영상을 유포했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불법 촬영과 유포를 유희 삼아 저질러온 혐의에,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놓인 여성을 가수 최종훈과 함께 집단 성폭행한 혐의까지 합해서 정준영이 구형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7년, 1심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징역 6년이다. 같이 기소된 최종훈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범행이 중대하고 심각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선고한 형량이,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5년이다. 정준영은 한국 나이로 서른하나, 최종훈은 서른이다. 가석방 없이 형을 다 치르고 나온다 해도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서른일곱과 서른다섯이다.

가수 정준영은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정준영이 지난 3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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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의미는

정준영과 최종훈에게 형이 선고되었을 때 두 사람이 울었다는 내용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물론 이것이 반성과 참회의 눈물이 아님은 우리 모두가 안다. 반성과 참회의 눈물이었다면, 애초에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인정했던 정준영이 법정에 가서는 단체 대화방 대화 내용이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가 아니기에 위법한 증거이며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을 리가 없다. 반성과 참회의 눈물이었다면, 정준영이 최후진술에서 “도덕적으로 카톡을 통해서 수치심을 드렸고 기분 나쁘게 했던 점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죄송하다”면서도 “억울함이 조금은 재판을 통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반성과 참회의 눈물이었다면, 최종훈이 최후진술에서 “특수준강간이라는 죄명은 너무 무겁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을 리가 없다. 이들은 지금 억울하다고 울고 있다.

물론 모든 피고인에겐 자신의 범죄 성립 여부를 다투고 형량을 낮추기 위해 법조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성범죄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억울하다며 항소하는 배경에는, 감히 저 정도의 범죄에 징역 5~6년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존재한다.

그 풍토란 무엇인가? 그것은 클럽 버닝썬 게이트가 한참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던 때에, 저널리즘 윤리를 수호할 의무를 지닌 기자와 방송국 피디 200여명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버닝썬 동영상’을 비롯한 온갖 불법 촬영물과 음란물, 성매매 후기와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사설 정보지가 공공연하게 공유되던 풍토다. 고 구하라가 남자친구였던 최종범으로부터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증언하자 곧바로 연관 검색어로 ‘구하라 동영상’이 뜨는 풍토다.

한때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쳤고 민주언론노조 건설에 앞장섰던 제1야당 국회의원이, 토론회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성평등은 상당히 듣기 거북한 이야기”이며 “페미니스트는 우리 사회가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으로 헌법 제11조 1항(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정면으로 부인해도 그걸 막을 수 없는 풍토다. 법이, 언론이, 시민이, 정치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남성의 성욕과 지배욕을 충족시켜줄 공공재쯤으로 다루는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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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참혹은 계속된다

그 풍토가, 감히 정준영과 최종훈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들고, 고 구하라가 사망 후에도 계속해서 2차 가해를 당하게 했다. 그 풍토가 “생이 끝날 때까지 참회하라”면서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할 수 있게 만들고, “범행이 중대하고 심각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불과 징역 6년과 징역 5년을 선고하게 했다.

예로 든 사례들은 그나마 대부분 가해자나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인 탓에 세간의 시선이 많이 몰린 사건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목이 상대적으로 덜 몰리는 사회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얼마나 벌어지고 있을까? 하여 참담한 마음으로 쓴다. 법이, 언론이, 시민이, 정치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참혹은 절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자.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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