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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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이회택은 당대 최고의 ‘센포’였다. ‘센포’는 공격의 중심인 ‘센터 포워드’를 줄여 부르던 당시 은어다. 어느날부터인가 이회택은 ‘호강’하게 된다. 새로 창단된 ‘양지’팀에 속한 것이다. 양지팀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지휘해 만든 축구팀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전신)가 1967년 만든 실업 드림팀이다. 66년 런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이 최강 이탈리아를 꺾으며 8강에 오르는 신화를 지켜봐야 했던 남한 정부는 중앙정보부가 직접 나서서 축구팀을 만들었다. 당시 북한과 예선 같은 조에 속했던 남한은 북한과 맞붙어 질 것을 우려해, 대회 불참을 선언하고 국제축구연맹에 벌금까지 무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북한과 치열한 체제 경쟁을 할 때의 이야기다. 육·해·공군의 우수 선수뿐 아니라 군 미입대자 가운데 우수선수들을 강제로 군에 입대시켜 양지팀에 소속시켰다. 서울 이문동 중앙정보부 안의 숙소에서, 최고의 잔디구장을 훈련장으로 사용했고, 식사는 정보부 전용식당을 이용했다. 시내 유명 식당의 요리사가 특별 채용됐다. 무려 105일에 걸쳐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국외 전지훈련도 했다. 최고 대우였다. 이회택은 나이 들어 “양지팀에 있으면서 선수 생명이 줄었다”는 고백을 한다. 무소불위의 양지팀에서 몸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와 직결되던 그런 암울한 시대의 이야기다. 그런 양지팀이 사라진 지 15년 뒤에 태어난 ‘신세대’ 박주영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영표형, 먼저 출발했잖아, 반칙하지 마.” 경기도 파주에서 독일 월드컵을 대비해 합숙훈련에 들어간 태극전사들이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편을 갈라 20여m를 릴레이로 달리는 경기다. 상대편인 ‘선배’ 이영표가 호각 소리가 나기 전 출발하자, 평소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인터뷰해 기자들을 애태웠던 박주영이 운동장 끝에서도 들릴 정도의 큰 소리를 낸 것이다.모두들 까르르 웃는다. 뒤에 서 있던 안정환도 웃고, 이를 지켜보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미소를 띤다. 이쯤 되면 동네 운동회 분위기다. 비록 호흡은 거칠어지고 땀도 나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다. 세계 최고의 골잡이로 브라질 공격의 핵인 호나우디뉴는 상대방의 거친 태클에 몸이 나뒹굴어도 웃으며 일어난다. 앞니를 보인 채 바보스럽게 웃기만 하는 그이지만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 길거리 축구를 하며 성장했다. 이민 2세로 역시 파리의 뒷골목에서 길거리 축구를 했던 프랑스 주공격수 티에리 앙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호나우디뉴가 항상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으로는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앙리나 호나우디뉴도 배고픔과 주변 환경에 대한 분노였을 뿐 정치체제로부터는 자유로웠다. 450g밖에 나가지 않는 가죽공은 그라운드에 던져지면 무한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공의 속도와 흐름에 따라 그라운드와 관중석, 그리고 인류는 예측 못할 혼돈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생각하는 선수라야 공의 순간 움직임을 포착해 공간을 파고들게 된다. 온몸의 근육이 무의식적으로 주변 상황에 적응한다. 도식적이고 관습에 얽매인 낡은 의식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래야 관중들의 맹목적이고 원초적인 열정에 불이 붙는다. 그런 월드컵을 느끼고 싶다. “주영, 네 마음껏 달려봐!”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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