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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3 20:02 수정 : 2006.06.09 16:06

신기섭 논설위원

아침햇발

언론에 ‘테러’라는 용어가 서슴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용어는 먼 외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칭하는 데 거의 한정되어 쓰였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야당 대표가 당한 폭력에 붙여질 때 그 무게나 느낌은 질적으로 다르다. 테러를 딱 규정하긴 어렵지만,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이나 민간 시설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다. 끔찍한 짓을 한 지아무개씨가 정치적 목적을 지녔다면 테러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테러가 아니라고 용서되는 건 아니다.

우리 상황을 볼 때, 이번 일이 ‘테러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공포를 부추기려는 세력은 언제나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불법, 폭력, 법 질서 교란’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는 날로 거세질 게 뻔하다. 눈앞의 표적은 아마 평택 대추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기득권 세력 일부는 지금까지도 “다 잡아넣으라”고 절규하다시피 했다.

불법이라는 판정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우리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옥죄는 ‘소크라테스의 망령’ 탓이 크다. 세계 4대 성인이라는 그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는데, 그 권위에 감히 누가 도전할 수 있겠는가? “대추리 주민들을 몰아내고 미군기지 확장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의 더 큰 폭력에 맞서는 정당한 저항권”이라는 항변은 그저 ‘불법에 대한 변명’으로 치부된다. 이해해줄 마음이 있는 사람들조차 ‘그래도 이제 불법은 곤란하지’라는 게 솔직한 심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아예 없다. 그의 사상을 ‘법이 문제가 있더라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에 대한 왜곡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잘못된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망명이나 탈옥 대신 독배를 선택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게 사형 판결을 존중해서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 말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밝혀낸 글들은 널려 있다.(권창은 전 고려대 교수의 논문 ‘소크라테스와 악법’, 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책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이정호 방송대 교수의 논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철학박사 김주일의 책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등이 있다)

김주일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이는 서기 2세기께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엉뚱하게 알려졌을까? 그 첫번째 책임은 1930년대 경성제국대 교수를 지내면서 국내 법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 학자 오다카 도모오에게 있다. 그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악법도 법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한 이후 이 해석이 계속 이어지고 강화돼 우리 도덕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여기엔 민중의 저항을 차단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독재 정권의 공작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왜곡된 소크라테스’는 폐기되어야 한다. 대신 “국가가 나에게 철학을 포기하라고 명령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추리를 지키자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을 수 없다.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다음 문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은 제쳐놓고 ‘불법’과 ‘법질서 교란’ 딱지붙이기에 열중하는 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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