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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9 18:59 수정 : 2016.03.29 20:27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근 20년간 5.3%포인트 낮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크게 떨어졌다는 보고서가 지난주 나왔다.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라는 흐름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국가간 비교를 해보니, 역시 심각했다. 가계의 가난이 고착화되면서 내수 침체로 경제의 활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로 상세히 분석해봤다. 가계소득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역시 임금(피용자 보수) 수준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1995년 취업 임금근로자의 1인당 피용자 보수는 1인당 국민소득의 1.6배였다. 그것이 1999년에는 1.5배, 2002년 1.4배, 2007년 1.3배로 떨어졌다. 2010년엔 1.2배까지 떨어졌다. 저임금 일자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는 이야기다.

왜일까?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자본의 탐욕’ 때문이란 설명은 너무 거창해서 공허해 보인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게 자본의 속성이다. 일단 이를 인정한다면, 자본주의의 역동성인 창조적 파괴가 시들해졌다는 점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코스피지수는 1000에서 2000으로 수직 상승했다. 주력 산업이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특수를 누리면서 상장사 순익이 급증했는데, 그 기업들의 이름을 보면 다 낯이 익다. 좋은 일자리를 새로 창출하는 혁신 기업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기존 기업들은 고용시장 유연화, 법인세 인하, 자유무역협정 덕도 많이 봤다.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은 맞지만 낡은 것을 보호하고 지원해 쉽게 돈만 벌게 해주면 창조적 파괴는 시들고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오랜 세월 정부 경제운용 전략이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되는 데는 다른 이유도 많다. 언제든 쉽게 해고당할 수 있는 일자리, 노동조합을 통한 교섭력이 없는 일자리는 대개 임금이 낮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하락해온 게 우리 현실이다. 얼마를 줘도 좋으니 일자리를 얻고 보자는 사람이 많아도 임금 수준은 떨어진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의 실업급여 제도, 은퇴 연령에 이른 고령자들이 너도나도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물론 자동화 등 신기술의 발달로 숙련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자리가 많이 생겨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않고 기업들한테 무작정 임금을 올리라고만 목소리를 높여서는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백성을 아끼는 덕 있는 대통령이 나온다고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도 없다. 조선시대 연산군 때부터 지역 특산물인 공물을 과도하게 거둬 백성들이 큰 고통을 겪었는데, 그 폐단을 고치려고 대동법을 논의해 시행에 옮기기까지 무려 200년이 걸렸다.

정남구 논설위원
물길을 돌리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은퇴 연령의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의 확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65살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1.3%로, 고용 선진국의 갑절이나 된다. 취업자는 204만명에 이른다. 기초연금을 늘려주고, 이들이 일자리 경쟁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노인을 위한 일이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월 2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어겼다. 예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장차 만들어낼 ‘연대’가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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