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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31 20:17 수정 : 2016.03.31 20:59

출근길에 현수막이 군데군데 내걸린 것을 보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모양이다. 이제 로고송도 울릴 것이고, 색깔옷 입은 운동원들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심심하다. 맥이 빠진 듯도 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번 선거는 후보 등록 전에 이미 반 이상은 치른 것 같다. 공천을 놓고 막장 드라마 같은 소동과 반전이 이어지면서 지켜보는 유권자들도 진작에 진이 빠졌다. 공천만 되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영남 텃밭’과 ‘호남 안방’ 지역구가 전체의 3분의 1 가까운 93석이어서 본선에 대한 흥미는 애초 그만큼 떨어져 있던 터다. 여야 내부 균열 등으로 영호남 20여곳의 판세가 요동친다지만, 나머지 70곳 안팎에선 당선자가 정해진 셈이다. 그런 곳에서 본선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게임이든 선거든 팽팽해야 재미나 관심도 생기는 법이다.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이대로라면 이번 선거는 뻔하다. 정치공학의 고차방정식을 들이댈 것도 없다. 4년 전 19대 총선의 경우,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에서 10%포인트 이내 차이로 당락이 갈린 선거구는 전체 112석 가운데 65석이었다. 3%포인트 이내에서 당락이 갈린 곳도 19곳이다. 이번 총선에선 수도권 122곳 중 104곳이 여당 후보 하나에 야당 후보가 둘 이상인 ‘1여다야’ 구도다. 정당 지지도를 보면, 야권 전체의 지지율 합계는 새누리당보다 크게 높지만 정당간 지지도 차이는 확연하다. 지난 총선처럼 수도권의 절반 이상에서 10%포인트 이내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면, 그런 접전지에서 야당이 각개약진할 경우의 승패는 볼 필요도 없다. 그 10%포인트는 국민의당 지지율과 비슷하게 겹친다.

누가 이기고 지든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초등학교 산수로도 뻔한 결과를 놓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곤란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당 후보가 더 확장성이 있다”며 다른 야당이 양보하라고 주장했다. 수도권 대다수 선거구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한자리 숫자 지지율로 3위에 그치고 있는 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대놓고 억지를 부리는 게 된다. 국민의당은 단일화 압박에 대해 거듭 “무릎 꿇기보다 서서 죽겠다”며 비장한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대체 무엇을 위해 죽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양당의 담합 체제를 3당 경쟁체제로 바꾸고 기득권에 안주해 있는 우리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는 말에서 명분을 짐작할 순 있다. 하지만 여당이 압승을 거둔다면 정치 혁신도, 3당으로서의 존립도 무망한 일이다. 한쪽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일이 죽기를 각오한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뭐라고 포장해도 착각하기에는 상황이 엄중하다.

여당의 엄살은 꼴불견이다. 지금의 선거구도가 유지된다면 새누리당은 과반인 150석은 물론, 180석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야당 표가 갈라진 탓이니 여당이 잘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짐짓 말하는 것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겠다. 여당 독주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려는 착시 유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렇게 180석을 넘기면 국회선진화법을 돌파해 노동관련법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등 여당 뜻대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
이번 총선은 최장의 경기침체 끝에, 지금보다 더한 절벽으로 떨어질 위기 앞에서 치르는 선거다. 선거 뒤엔 구조조정으로 문 닫는 기업이 여럿 나오고 청년실업에 더해 해고 바람이 닥칠 수도 있다. 정치 수사와 현란한 활극에 한눈팔기엔 너무 많은 것이 걸렸다. 착각에 빠져선 안 되는 선거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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