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3 19:12
수정 : 2016.05.03 19:12
법조를 배회하던 두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관예우와 법조 브로커라는 유령이다. 법원과 검찰은 그동안 전관예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해왔다. 법조 브로커도 수사나 재판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말해왔다. 께름칙하긴 했지만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청탁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정운호 게이트’는 출몰을 거듭하던 유령이 그나마 짐작할 만한 형체를 드러낸 사건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검사장 출신 ㅎ변호사는 퇴직 후 굵직한 형사사건을 도맡다시피 했다. 공식 자료로도 2013년 월평균 소득이 7억6천만원이다. 그런 ‘잘나가는’ 전관 변호사가 거물 법조 브로커라는 고교 후배의 소개로 회사 고문변호사가 됐다. ㅎ변호사는 회사 대표인 정운호씨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1년6개월 넘게 경찰 수사를 받을 때부터 변호를 맡아, 경찰과 검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얻어냈다. 경찰과 검찰이 내세운 무혐의 처분의 이유는 “제보자가 협조를 거부한다”거나 “카지노 관계자가 ‘정씨가 출입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절차상으로는 이유가 될지 몰라도, 수사를 제대로 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핑계다. 몇 달 만의 재수사로 도박 혐의가 확인되면서 처음 수사는 ‘봐주기’로 드러났다. 애초 느슨하게 수사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10월 정씨가 기소될 때도 중형이 예상되는 회삿돈 횡령 혐의는 빠졌다. 공소장에 기재할 정도였다면 검찰이 확인한 것일 텐데 단순도박으로만 기소했다.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도 없이 그랬으니 대놓고 눈감아준 셈이다. ‘아는 놈 붙들어 매듯 한다’는 속담이 딱 맞다. 누가 ‘아는 놈’이기에 그랬을까.
과거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2006년 4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막 개업한 검찰 특수부장 출신의 변호사 등이 대거 투입됐다. 정 회장이 두 달 만에 보석되기까지 수임료와 성공보수로 건네진 돈은 이번 정운호 사건의 몇 배라고 한다.
이를 열심히 변호한 결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관’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은 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면하거나 가볍게 처벌받는 데 그친다면 사법체제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허물어진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80%를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까지 있는 터다.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법제도는 위태롭게 된다. 무엇보다 전관예우는 현직의 후배가 퇴직한 선배를 잘 봐주면 미래의 전관이 될 자신도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터 잡은 것이다. ‘인지상정’이 아니라 실상은 ‘사후뇌물’ 혹은 ‘부패의 상속’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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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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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해결의 출발점이 퇴직한 전관 변호사가 아니라 현직의 법원·검찰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사 강도를 낮춰주고, 혐의를 눈감아주고, 보석에 동의해주고, 구형을 낮추거나 선고형량을 깎아주는 주체는 현직이다. 그들이 전관 변호사를 봐줄 수 없도록 투명하게 감시하고, 현직의 전관예우 행위에 불이익을 준다면 전관예우의 근절도 그리 멀지 않게 된다. 국회에도 몰래변론이나 전화변론 따위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잘 다듬어 처리하면 전관예우를 막을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당장의 정운호 사건도 검찰의 ‘제 머리 깎기’가 어렵다면 특검으로라도 환부를 드러내는 게 옳다. 언제까지나 유령이라고 못 본 체할 순 없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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