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7.05 18:10 수정 : 2016.07.05 18:49

여현호
논설위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풍경은 단출하다고 한다. 회의가 시작되면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대상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 명을 심사 대상자로 제시한다. “자, 이렇게 심사하시면 되겠습니다”라는 ‘권유’가 따른다. 추천위는 이들이 부적격자가 아니라면 후보자로 추천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명단에 없는 사람도 심사 대상이 될 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적격으로 판정돼야 후보자로 추천된다. 추천위 규칙에 그렇게들 돼 있다. ‘문제없으면 추천’과 ‘꼭 맞아야 추천’ 사이의 거리는 멀다. 2015년 8월4일 추천위에선 명단에 없던 인사가 거론됐지만 “진보라서 안 된다”는 반대가 나와 표결 끝에 탈락했다. 위원 10명 가운데 6명을 사실상 대법원장이 정하는 터에 대법원장 의중 밖의 사람이 추천될 가능성은 애초 희박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단색 대법원’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대법관 12명 가운데 비서울대는 2명뿐이다. 여성도 2명이고, 현직 법관에서 직행하지 않은 이도 2명뿐이다. 판사 경력이 없는 이, 임명 당시 40대였던 이도 각각 1명이다. 14명 중 11명이 ‘50대 판사 출신 남성’이다. 다양성은 출신 지역에서나 찾을 수 있다.

대법원이 ‘제한된 여건’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변명이 있긴 하다. ‘제한된 여건’이라 함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관계, 대법관이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 법원 내 인사적체 등이겠다. 요즘 들어선 외부 조건이 아닌 ‘가치관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차피 판사 출신 가운데 뽑을 수밖에 없다면 그 속에서나마 다양성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이기택 현 대법관 제청도 나름대로 다양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이 대법관은 민법·민사소송법·민사집행법 분야의 이론가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도 대법원의 절대다수는 민법 전문가다. 그가 전임자들에 견주면 덜 보수적일지라도, 진보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소수라는 여성, 비서울대, 향판 출신 대법관들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13 대 0’의 만장일치를 거들 뿐이거나, 소수의견보다 다수의견에 동참하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판결과 법리가 독특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은데 대체 어디서 다양한 가치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들 판사의 친구 중 노동자, 특히 노조활동을 하는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 이들 판사는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판사들과만 어울릴 것이다. 해서 이들은 다른 판사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고 뿌듯해할 것이다.” 강문대 변호사가 ‘야릇한 노동사건 판결들’에 대한 불편한 소회를 담아 <매일노동뉴스>에 쓴 ‘판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법관이 그 집단 다수의 생각이나 행동 양태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개인에겐 신념·태도·행동방향·가치관을 결정하는 데 강한 영향을 끼치는 준거 기준이 되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상당수 법관에게 그런 ‘준거집단’은 민법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법원일 것이다. 그 속에서 가치관의 다양성을 찾는들 차이가 크진 않을 것이다. 살아온 터가 다르고 지내온 삶이 달라야 생각도 달리 여물어질 수 있다. 법원이 아닌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대법원에 들어와야 비로소 우리 대법원도 ‘가치관의 다양성’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설령 당장은 판사 일색 대법원에서 ‘개밥에 도토리’ 신세라도 그렇게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더는 시늉뿐인 다양성에 자위할 때가 아니다.

yeop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