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3 17:48
수정 : 2016.10.26 18:01
김이택
논설위원
‘고난을 벗 삼’겠다는 대통령이 터져 나오는 측근들 비리에 “비상시국에…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방어벽을 친 뒤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대응이 도를 넘고 있다.
뒤늦게 국정감사에 복귀한 여당은 진상규명의 제스처는커녕 증인 명단에 ‘최’ ‘차’나 ‘우’자만 나와도 몸서리치며 야당의 말문조차 틀어막는다. 카드 사용 내역이 의심스럽다며 국회의장 부인을 맞불용 증인으로 신청할 정도면 금도를 벗어났다.
민정수석 아들을 “코너링이 좋아서” 뽑았다는 경찰, 재벌기업 강제모금을 시사하는 경총 회장의 발언을 “여담이라” 속기록에서 뺐다는 문화예술위원장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민정수석 처가의 석연찮은 부동산 거래에 핵심 증인도 안 부른 채 “자연스러운 거래”라고 했다가 부동산업자의 폭로로 대망신을 당한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행태에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그런데최순실은?’에 이어 ‘#게다가차은택은?’ ‘#그리고우병우는?’ 식의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으로 조롱과 함께 분노가 넘쳐난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그토록 싸고도는 배경엔 물론 최씨 일가와의 40년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 유신 말기 박정희 대통령이 이른바 ‘최태민 친국 사건’에서 최 목사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이래 최씨 일가는 10·26을 거치면서 홀로 된 박근혜 대통령과 혈육보다 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친동생인 박근영·박지만씨가 1990년 8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최태민씨의 손아귀에서 언니를 구출해달라”며 탄원서를 낸 데서도 확인된다.
그렇더라도 2년 전 정윤회 게이트로 그 곤욕을 치르고도 다시 재벌사에서 수백억원을 거둬 최씨가 만드는 재단에 모아준 것은 정신세계를 의심해야 할 만큼 상식을 뛰어넘는다. 비선 실세가 만든 재단 사람들을 해외순방에 동행시키고 투자유치 협정에 사업 주체로까지 명기했다니 일해재단 때도 없던 일이다. 최근 <창비 주간논평>에 기고한 민변 부회장 김남근 변호사의 주장처럼 “미르재단이 만들어지던 지난해 10월경 전경련은 노동개혁 5법과 원샷법 등의 추진을 정부에 요구하고…재벌총수들의 사면을 위해 앞장서 뛰고 있었”으니 뇌물죄나 제삼자 뇌물수수죄 가능성도 농후하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4·13 총선 이후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쁜 사람’으로 찍힌 문체부 국·과장은 쫓아내면서도, 여야가 요청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조차 거절할 정도로 극단적인 성향의 박승춘 보훈처장 경질 요구는 일축했다. 어버이연합의 배후로 지목되는 행정관을 여전히 청와대에 두는 것도 사실상 아스팔트 우익들의 준동을 고무하고 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고영주류의 극우파조차 공영방송 이사장 자리에 붙박아두고 있으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폭로 정도엔 눈 하나 깜짝할 리 없다.
앞으로가 문제다. 당장 “남으로 오라”는 등 잇따른 자극적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을 높여가는 대통령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내년엔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벌써 검찰의 총선 사범 편파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재단 비리로 자칫 ‘불법’ 멍에까지 쓸지도 모를 대통령이 정상적이고 중립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을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를 빼놓고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대선에서 정보기관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97년에는 북풍공작을 꾸몄고 2012년 대선 때는 댓글 부대까지 운영했다. 우병우 수석을 옆에 둔 대통령이 그래서 더 불안하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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