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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0 17:50 수정 : 2016.10.20 19:21

여현호
논설위원

2012년 이맘때도 검찰은 위기였다. 김광준 부장검사 수뢰 사건과 검사 성 추문으로 안팎이 뒤숭숭했다. 그래도 그때는 술렁거리며 부끄러워라도 했다. 잇따라 평검사회의가 소집돼 밤늦게까지 검찰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개혁의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홍만표·진경준·김형준 등 전·현직 간부들의 비리로 위기는 더 깊어졌는데도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집단행동은커녕 자조와 한탄은 검사들의 웅크린 어깨도 넘지 못한다. 자정의 시늉도 못 할 정도로 검찰이 위기에 무감해졌나 보다. 대통령선거 직전이었던 그때와 달리 현재 권력이 여전히 서슬 퍼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모습은 보기 딱하다.

오염이 한계를 넘으면 자정이 불가능해진다. 환경경제학자 데이비드 피어스는 “자정능력을 초과하는 환경오염은 연쇄적으로 자정능력을 감소시켜 종국에는 자정능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검찰이 그렇다. 비리가 터지면 대책을 내놓지만 그때뿐, 비리는 꼬리를 물고 거듭됐다. 2004년 신설된 감찰위원회, 2010년 스폰서검사 사건 뒤의 특임검사, 김광준 사건 뒤의 감찰전담 검사 등은 하나같이 비리 차단에 무력했다. 이번에 만든 특별감찰단도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비리 감수성은 그새 더 퇴보했다. 검찰 수뇌부는 진경준·김형준 의혹 때 서너 달 넘게 수사를 미적대며 감싸기만 했다. 홍만표 전 검사장의 전관예우 의혹도 비리 상대일 현직들엔 손도 대지 못했다. 오염이 이미 손쓰지도 못하게 된 탓일까.

검찰은 이미 이상하다. 몇년 전과 비교해도 정상이 아니다. 누가 봐도 이해 못 할 일을 태연히 저지른다.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국회의원 가운데 친박 의원들만 빼고 기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혐의는 다른 의원들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불출마를 겁박한 친박 실세들을 무혐의 처리한 것도 비웃음을 산다. 과거에도 정치검찰로 비판받았지만 사실관계나 법리를 이렇게나 나 몰라라 하진 않았다.

비정상은 또 있다. 우병우·이석수 특별수사팀은 수사 대상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수사상황까지 보고한다. 그러고도 믿으라면 악의적인 농담이다. 사건 처리에 허덕이는 형사부에 복잡한 미르재단 고발 사건을 배당한 것도 사건을 유야무야하려는 것이겠다. 그 의도를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으니 더 악의적이다. 그런 비정상에 내부 제동이 없는 것도 이상징후다. 가뜩이나 요즘 검찰은 손대는 사건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방산비리, 해외자원개발, 롯데·포스코 수사 등이 다 헛발질이다. “검찰이 무능하면 국민이 불안하고, 검찰이 깨끗하지 못하면 국민이 분노한다”지만, 검찰의 무능과 비리는 이미 익숙한 일이다.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비정상이다.

조직 구성원이나 조직이 기대되거나 바람직한 상태·결과에서 이탈하는 것을 조직 실패라고 한다. 지금의 검찰은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지도 못했고, 주어진 기능과 목표에서도 크게 벗어났으니 ‘검찰 실패’라고 할 만하다. 수장인 검찰총장 대신 민정수석이 인사권을 쥐고 사실상 조직을 장악했다니, 그렇게 뒤틀린 조직이 스스로 실패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외부로부터의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현재 권력이 기울면 그런 검찰도 고개를 다시 세우고 칼을 들 수 있을까? 장담하기 힘들다. 지금 검찰에 복원 기능이 남아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적어도 다음 인사철까지는 마비가 계속될 듯하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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