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였던 2005년 일이다. 야당 대표로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몽골에서도 초청이 와서, 후진타오 면담 직후 울란바토르로 이동해 몽골 대통령과 만찬을 하기로 일정을 짰다. 박근혜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였다. 외교 일정이라 곧바로 주한 몽골대사관에도 통보했다. 그런데 1시간쯤 뒤 외부에 나간 박 대표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몽골 일정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당직자들은 “당 바깥의 누군가가 박 대표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윤회’일 거라고 수군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던 셈이다. 정윤회씨는 최순실씨 남편이었기에 권력의 한 자락을 누렸을 뿐이다. 그나마 최순실씨와 갈라서면서 그것마저 사라져 버렸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는 최순실씨였다는 게 요즘 드러난 실상이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인사 개입이나 이권 개입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중요한 정책 결정까지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건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윤회씨나 최순실씨나 정책을 다룰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아무리 자문교수팀을 꾸린다 해도 최소한 그 내용을 조율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2012년 대선 무렵 박근혜 후보가 유세를 하러 갈 때면 맨 앞엔 항상 경광등을 단 검은색 지프가 선도를 했다. 경찰에서 파견한 경호팀은 아니었다. 어느 의원이 궁금해서 ‘문고리 3인방’에게 물었더니 “자원봉사 경호원들”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 의원은 “정윤회가 사설 경호팀을 이끌고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옷처럼 박 대통령과 밀착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머리가 되었는지엔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박 대통령은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의 대면 보고를 거의 받지 않았다. 관저에서 보고서만 읽고 정책 결정을 혼자서 했다. 드물지만 아주 논란 많은 정책은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불러서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된 정책도 하룻밤 새 뒤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2013년 9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를 불러온 ‘기초연금 개편안’ 결정 과정이 그랬다. 기초연금 지급 액수와 수혜 범위를 국민연금과 연계해 축소하자는 게 개편안 핵심이었다. 진영 장관은 대선공약 포기라며 개편안에 반대했다. 박 대통령이 장관과 고용복지수석을 불렀다. 이 자리에선 복지부 의견이 일리가 있다며 대통령이 복지부 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대통령은 돌연 ‘기초연금 축소’를 복지부에 통보했다. 밤새 마음이 바뀐 것이다. 전날 청와대 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후속 작업을 준비하던 복지부에선 난리가 났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복지부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의 귀를 잡았을까. 잘못된 결정이라도 내리려면 내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최순실씨가 그랬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권력 운용을 보며 자란 박 대통령은 수평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정점으로 수직적인 권력체계를 구축했다. 가장 중심에 박 대통령이 그리고 바로 옆에 최순실씨와 문고리 3인방이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최경환·이정현 의원 등은 그 바깥의 동심원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제3의 또 다른 인물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는 오직 박 대통령만이 안다.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박 대통령 조사가 최순실씨 문제에 한정돼선 안 되는 이유다. pcs@hani.co.kr
칼럼 |
[아침햇발] 최순실 뒤에 누군가 또 있다 / 박찬수 |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였던 2005년 일이다. 야당 대표로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몽골에서도 초청이 와서, 후진타오 면담 직후 울란바토르로 이동해 몽골 대통령과 만찬을 하기로 일정을 짰다. 박근혜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였다. 외교 일정이라 곧바로 주한 몽골대사관에도 통보했다. 그런데 1시간쯤 뒤 외부에 나간 박 대표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몽골 일정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당직자들은 “당 바깥의 누군가가 박 대표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윤회’일 거라고 수군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던 셈이다. 정윤회씨는 최순실씨 남편이었기에 권력의 한 자락을 누렸을 뿐이다. 그나마 최순실씨와 갈라서면서 그것마저 사라져 버렸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는 최순실씨였다는 게 요즘 드러난 실상이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인사 개입이나 이권 개입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중요한 정책 결정까지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건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윤회씨나 최순실씨나 정책을 다룰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아무리 자문교수팀을 꾸린다 해도 최소한 그 내용을 조율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2012년 대선 무렵 박근혜 후보가 유세를 하러 갈 때면 맨 앞엔 항상 경광등을 단 검은색 지프가 선도를 했다. 경찰에서 파견한 경호팀은 아니었다. 어느 의원이 궁금해서 ‘문고리 3인방’에게 물었더니 “자원봉사 경호원들”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 의원은 “정윤회가 사설 경호팀을 이끌고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옷처럼 박 대통령과 밀착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머리가 되었는지엔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박 대통령은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의 대면 보고를 거의 받지 않았다. 관저에서 보고서만 읽고 정책 결정을 혼자서 했다. 드물지만 아주 논란 많은 정책은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불러서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된 정책도 하룻밤 새 뒤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2013년 9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를 불러온 ‘기초연금 개편안’ 결정 과정이 그랬다. 기초연금 지급 액수와 수혜 범위를 국민연금과 연계해 축소하자는 게 개편안 핵심이었다. 진영 장관은 대선공약 포기라며 개편안에 반대했다. 박 대통령이 장관과 고용복지수석을 불렀다. 이 자리에선 복지부 의견이 일리가 있다며 대통령이 복지부 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대통령은 돌연 ‘기초연금 축소’를 복지부에 통보했다. 밤새 마음이 바뀐 것이다. 전날 청와대 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후속 작업을 준비하던 복지부에선 난리가 났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복지부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의 귀를 잡았을까. 잘못된 결정이라도 내리려면 내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최순실씨가 그랬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권력 운용을 보며 자란 박 대통령은 수평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정점으로 수직적인 권력체계를 구축했다. 가장 중심에 박 대통령이 그리고 바로 옆에 최순실씨와 문고리 3인방이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최경환·이정현 의원 등은 그 바깥의 동심원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제3의 또 다른 인물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는 오직 박 대통령만이 안다.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박 대통령 조사가 최순실씨 문제에 한정돼선 안 되는 이유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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