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검찰의 변신은 놀랍다. 하루하루의 입장 변화를 늘어놓으면 고속촬영 영상 같다. 박근혜 대통령 수사의 경우, 10월26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수사 불가’를 못 박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0월27일 “헌법에 정해져 있으니 멘트하지 않겠다”고 아예 입을 닫았다. 11월2일 김 장관이 “수사 경과에 따라 필요성이 검토될 것”이라더니, 11월3일 “필요한 경우 수사 자청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자청했다. 그 뒤에도 한참이나 “정해진 것 없다”던 검찰은 ‘100만 촛불’ 다음날인 13일,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며 ‘15·16일 조사 방침’을 공개했다. 뇌물죄 말바꿈은 더 현란하다.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느냐는 박 대통령을 제대로 수사할지 가늠하는 척도다. 검찰은 11월2일 “법리적으로 뇌물죄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 그 부분은 뇌물로 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3자뇌물죄 등이 가능하다는 언론의 지적에도 검찰은 11월3일 “되는데 왜 안 하겠냐”고 타박하고, “논리가 되면 갖다달라”고 빈정댔다. ‘20만 촛불’ 뒤인 11월8일, 검찰은 “앞으로도 뇌물죄로 안 보겠다는 말을 한 적 없다. 나오면 한다”고 말했다. ‘100만 촛불’ 직후인 14일엔 “부정적으로 말한 적 없다. 모든 가능성 다 본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까지 “아직 조사도 안 했는데…”라며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바람보다 더 빨리”는 아니라도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급하게 일어선 것은 바로 검찰이다. 검찰의 표변을 보면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권력이 기울면 비정상적으로 추락한 지금의 검찰도 과연 고개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를 물었지만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권력이 저물 즈음 검찰이 그간 복종하던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봤다. 이번엔 민심이 크게 요동치면서 상황이 급변한 탓에 검찰의 표변도 과거보다 훨씬 단기간에 급속히 진행됐을 뿐이다. 국정 수행이 불가능해진 박 대통령이 더는 인사권자가 아니라고 깨달은 탓일까. 검찰이 서두르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겠다. 당장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특검과 국정조사가 기다리고 있다. 특검 대상엔 검찰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휘둘리고 또한 결탁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사실이라면 일종의 간접정범이니, 검찰의 위신 추락에 그치지 않고 검찰을 이대로 둘 것이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게 된다. 이미 그런 상황은 예고돼 있다. ‘100만 촛불’의 도도한 물결이 장차 어디로 향할지는 지금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미뤄선 안 될 일은 분명하다. 청와대를 앞세운 ‘사설 권력’이 공적 영역과 민간까지 유린하도록 아무런 경고와 제어의 기능을 못 한, 고장 난 시스템을 최소한이라도 정비하는 일이다. 그런 고장 난 시스템에는 검찰이 첫손에 꼽힌다. 국민 분노가 모이기로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더할 것이다. 방향도 분명하다. 대통령과 민정수석이 쥔 검찰 인사권 때문에 권력이 비호하는 비선 실세를 제때 도려내지 못했다면 그런 인사권은 옮겨야 한다. 청와대 등에 파견된 검사들이 권력의 통로가 돼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면 철수시키는 것이 옳다. 검찰의 과잉권력이 편파와 무리수를 일삼는 지금의 괴물을 만들었다면 견제를 위해서라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마땅하다. 검찰 개혁은 촛불 이후 당장 해야 할 일이다. 발 빠른 변신 따위 처세로 막을 일이 아니다. yeopo@hani.co.kr
칼럼 |
[아침햇발] 검찰은 변신해도 ‘유죄’ |
논설위원 검찰의 변신은 놀랍다. 하루하루의 입장 변화를 늘어놓으면 고속촬영 영상 같다. 박근혜 대통령 수사의 경우, 10월26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수사 불가’를 못 박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0월27일 “헌법에 정해져 있으니 멘트하지 않겠다”고 아예 입을 닫았다. 11월2일 김 장관이 “수사 경과에 따라 필요성이 검토될 것”이라더니, 11월3일 “필요한 경우 수사 자청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자청했다. 그 뒤에도 한참이나 “정해진 것 없다”던 검찰은 ‘100만 촛불’ 다음날인 13일,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며 ‘15·16일 조사 방침’을 공개했다. 뇌물죄 말바꿈은 더 현란하다.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느냐는 박 대통령을 제대로 수사할지 가늠하는 척도다. 검찰은 11월2일 “법리적으로 뇌물죄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 그 부분은 뇌물로 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3자뇌물죄 등이 가능하다는 언론의 지적에도 검찰은 11월3일 “되는데 왜 안 하겠냐”고 타박하고, “논리가 되면 갖다달라”고 빈정댔다. ‘20만 촛불’ 뒤인 11월8일, 검찰은 “앞으로도 뇌물죄로 안 보겠다는 말을 한 적 없다. 나오면 한다”고 말했다. ‘100만 촛불’ 직후인 14일엔 “부정적으로 말한 적 없다. 모든 가능성 다 본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까지 “아직 조사도 안 했는데…”라며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바람보다 더 빨리”는 아니라도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급하게 일어선 것은 바로 검찰이다. 검찰의 표변을 보면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권력이 기울면 비정상적으로 추락한 지금의 검찰도 과연 고개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를 물었지만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권력이 저물 즈음 검찰이 그간 복종하던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봤다. 이번엔 민심이 크게 요동치면서 상황이 급변한 탓에 검찰의 표변도 과거보다 훨씬 단기간에 급속히 진행됐을 뿐이다. 국정 수행이 불가능해진 박 대통령이 더는 인사권자가 아니라고 깨달은 탓일까. 검찰이 서두르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겠다. 당장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특검과 국정조사가 기다리고 있다. 특검 대상엔 검찰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휘둘리고 또한 결탁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사실이라면 일종의 간접정범이니, 검찰의 위신 추락에 그치지 않고 검찰을 이대로 둘 것이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게 된다. 이미 그런 상황은 예고돼 있다. ‘100만 촛불’의 도도한 물결이 장차 어디로 향할지는 지금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미뤄선 안 될 일은 분명하다. 청와대를 앞세운 ‘사설 권력’이 공적 영역과 민간까지 유린하도록 아무런 경고와 제어의 기능을 못 한, 고장 난 시스템을 최소한이라도 정비하는 일이다. 그런 고장 난 시스템에는 검찰이 첫손에 꼽힌다. 국민 분노가 모이기로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더할 것이다. 방향도 분명하다. 대통령과 민정수석이 쥔 검찰 인사권 때문에 권력이 비호하는 비선 실세를 제때 도려내지 못했다면 그런 인사권은 옮겨야 한다. 청와대 등에 파견된 검사들이 권력의 통로가 돼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면 철수시키는 것이 옳다. 검찰의 과잉권력이 편파와 무리수를 일삼는 지금의 괴물을 만들었다면 견제를 위해서라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마땅하다. 검찰 개혁은 촛불 이후 당장 해야 할 일이다. 발 빠른 변신 따위 처세로 막을 일이 아니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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