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인사를 앞둔 젊은 검사가 웬일로 찾아왔다. 검찰총장과 가깝다는 아무개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숨은 인맥을 탐지해낸 것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청탁을 해야 인사에서 제 몫을 지킬 수 있다고 믿게 한 검찰 풍토가 한심했다. 역시 그즈음이다. 정권 실세의 집에서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검사장과 마주쳤다. 곧 있을 인사에서 ‘뒷배’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그조차 그럴 정도로, 아래부터 위까지 검사들은 인사에 목을 매고 있었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인사 때마다 소문과 흑색선전이 극성이다. 한두 차례 ‘물먹으면’ 회복이 어려우니 더 안간힘이다. 누가 칼자루를 쥐었는지 열심히 살핀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게 돼 있다지만, 실제로는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부분의 주요 보직을 정한다. 그 뜻을 거스르면 앞날이 힘들다. 검찰 통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례는 많다. 2014년 1월 정기인사에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이 대거 좌천 인사를 당했다. 적당히 멈추라는 ‘외압’까지 폭로한 데 대한 보복이다. ‘채동욱 찍어내기’를 비판한 간부들도 한직으로 밀렸다. 그 와중에 ‘권력의 뜻’에 순응한 검사들은 분명한 보상을 받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때 일이다. 그 이듬해 1월 인사에서도 세월호 사건에서 황 장관과 민정수석실의 뜻을 거슬러 해경 수사와 기소를 관철한 간부들이 전원 좌천됐다. 2015년 12월 인사에선 우병우 민정수석과 가깝다는 인사들이 약진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여럿 검찰을 떠났다. 검찰 인사를 청와대가 좌우하는 한 언제라도 다시 벌어질 일들이다. 그런 인사가 곧 닥친다. 정상대로라면 1~2월 사이에 검사장-부장검사-평검사 인사가 잇따르게 돼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인사권 행사 의지가 강한 모양이다. 그는 22일 김동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만나 “필수 불가결한 인사에 한해 인사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부장검사급 이상 인사는 미루자는 제안에도 “참고는 하겠지만, 검찰 인사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구분해서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사를 강행하면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하는 듯하다. 인사권이 그렇게 굳어지는 듯하면 검찰 조직 전체가 몸을 기울이게 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기지개를 켤 것이다. 통제 장치가 다시 작동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인사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요즘 검찰은 유독 조용하다. 비리 수사가 잇따를 법한 정권 말인데도 엘시티 수사 등 기존 수사마저 멈춘 듯하다. 눈치 보기가 시작된 것일까. 안 될 일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는 대통령직 행사 전체에 대한 탄핵이고 거부다. 대통령을 업고 검찰을 유린한 패악도 함께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짓이 다시 벌어지도록 둘 순 없다. 법적으로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 대통령의 권한과 같진 않다. 임시적 통치 대행인 만큼, 현상유지적·보존적 기능에 한정된다. 대법원·헌재·국무위원 등 헌법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인사권도 국가적·사회적으로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검찰 간부 인사가 급하게 꼭 해야 할 인사는 결코 아니다. 검찰의 앞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미루는 게 당연하다. 지금 같은 권력 공백기에는 괜한 월권적 침해로부터 헌법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yeopo@hani.co.kr
칼럼 |
[아침햇발] 검찰 인사는 미뤄야 한다 / 여현호 |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인사를 앞둔 젊은 검사가 웬일로 찾아왔다. 검찰총장과 가깝다는 아무개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숨은 인맥을 탐지해낸 것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청탁을 해야 인사에서 제 몫을 지킬 수 있다고 믿게 한 검찰 풍토가 한심했다. 역시 그즈음이다. 정권 실세의 집에서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검사장과 마주쳤다. 곧 있을 인사에서 ‘뒷배’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그조차 그럴 정도로, 아래부터 위까지 검사들은 인사에 목을 매고 있었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인사 때마다 소문과 흑색선전이 극성이다. 한두 차례 ‘물먹으면’ 회복이 어려우니 더 안간힘이다. 누가 칼자루를 쥐었는지 열심히 살핀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게 돼 있다지만, 실제로는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부분의 주요 보직을 정한다. 그 뜻을 거스르면 앞날이 힘들다. 검찰 통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례는 많다. 2014년 1월 정기인사에선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이 대거 좌천 인사를 당했다. 적당히 멈추라는 ‘외압’까지 폭로한 데 대한 보복이다. ‘채동욱 찍어내기’를 비판한 간부들도 한직으로 밀렸다. 그 와중에 ‘권력의 뜻’에 순응한 검사들은 분명한 보상을 받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때 일이다. 그 이듬해 1월 인사에서도 세월호 사건에서 황 장관과 민정수석실의 뜻을 거슬러 해경 수사와 기소를 관철한 간부들이 전원 좌천됐다. 2015년 12월 인사에선 우병우 민정수석과 가깝다는 인사들이 약진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여럿 검찰을 떠났다. 검찰 인사를 청와대가 좌우하는 한 언제라도 다시 벌어질 일들이다. 그런 인사가 곧 닥친다. 정상대로라면 1~2월 사이에 검사장-부장검사-평검사 인사가 잇따르게 돼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인사권 행사 의지가 강한 모양이다. 그는 22일 김동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만나 “필수 불가결한 인사에 한해 인사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부장검사급 이상 인사는 미루자는 제안에도 “참고는 하겠지만, 검찰 인사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구분해서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사를 강행하면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하는 듯하다. 인사권이 그렇게 굳어지는 듯하면 검찰 조직 전체가 몸을 기울이게 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기지개를 켤 것이다. 통제 장치가 다시 작동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인사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요즘 검찰은 유독 조용하다. 비리 수사가 잇따를 법한 정권 말인데도 엘시티 수사 등 기존 수사마저 멈춘 듯하다. 눈치 보기가 시작된 것일까. 안 될 일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는 대통령직 행사 전체에 대한 탄핵이고 거부다. 대통령을 업고 검찰을 유린한 패악도 함께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짓이 다시 벌어지도록 둘 순 없다. 법적으로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 대통령의 권한과 같진 않다. 임시적 통치 대행인 만큼, 현상유지적·보존적 기능에 한정된다. 대법원·헌재·국무위원 등 헌법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인사권도 국가적·사회적으로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검찰 간부 인사가 급하게 꼭 해야 할 인사는 결코 아니다. 검찰의 앞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미루는 게 당연하다. 지금 같은 권력 공백기에는 괜한 월권적 침해로부터 헌법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yeopo@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