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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2 17:58 수정 : 2017.02.02 21:43

정남구

논설위원

노름판은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을 남긴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판이 정리되지는 않는다. 딴 사람은 잃은 사람에게 ‘개평’을 줘야 한다. 영화 <타짜>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안 주면 죽는 수가 있고, 너무 적게 주면 수갑을 차는 수가 있다.” 도박은 범죄다. 딴 사람은 잃은 사람의 원한을 사지 않고 불법행위를 입막음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개평으로 줘야 한다. 개평이 건네지는 순간, 둘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

권력자에게, 또는 그가 지정한 쪽에 재벌기업이 돈을 줬다고 보자. 주는 쪽과 받는 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힘이 센 걸까? 얼핏 생각하면 주는 쪽이 약자일 것 같다. 최순실씨 쪽에 돈을 건넨 재벌기업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안 주면 죽는 수가 있어서” 줬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안 주면 죽는 수가 있는가? 맥락을 뜯어보면, 그들은 누군가에게는 ‘딴 쪽’이고, 그 과정에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돈이 건네진 순간, 이제 받은 쪽도 “아차 하면 수갑을 차는” 수가 생긴다. 둘 사이의 힘은 그렇게 균형을 이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재벌기업들이 몰래 돈을 건넨 곳을 보면 좀 가관이다. 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등에게 건넨 것은 제쳐놓자. 특별검사가 수사를 해보니, 재벌기업들이 어버이연합·엄마부대 같은 단체들에 돈을 보냈다고 한다. 친정부적인 관제시위를 많이 하는 곳들이다. 공개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은 시민단체들에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이 아니다. 청와대가 돈을 보내라고 요구한 단체 가운데 몇 곳은 재벌기업이 명단에서 빼달라고 극구 거부했다니, 돈을 보내는 게 떳떳하지 못한 일임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업들이 어쩌다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했는가.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이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단체의 존재다. 청와대와 재벌기업들 사이에서 돈이 오가도록 중개한 곳이 바로 전경련이다. 만약 전경련이 없었다면 그 많은 재벌기업들이 ‘회비 납부 비율에 따라’ 분담금을 나누고 일사불란하게 돈을 모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일이나 하는 재계 단체의 꼴이라니. 그러니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 게다.

전경련 해체론이 들끓고 있지만,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자체 쇄신을 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청와대와 재벌기업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이승철 부회장이 쇄신방안 마련 작업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이 그런 꼴이 됐는데도 사과의 말 한마디 없다. 주요 재벌그룹은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지만,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재계 안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지구촌에 유일한 ‘재벌 이익단체’인 전경련은 더 늦기 전에 해체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추잡한 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다. 이번 일에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느끼는 재계 총수가 먼저 나서서 전경련 해체를 제안해야 한다. 낡은 과거와 단절은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

전경련이 이달 하순 정기총회를 연다. 자체 쇄신안을 안건으로 올리고, 임기가 끝나는 허 회장의 후임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재계 총수 가운데는 회장직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경제 관료를 지낸 전직 고위 인사들을 영입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야 어찌 다 알겠는가마는 만에 하나 맡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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