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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4 18:13 수정 : 2017.02.14 18:47

고명섭
논설위원

논문이라고 하면 보통 논리적인 언어로 쓰인 객관적인 글을 떠올리게 된다. 논문이라는 건축물은 감정을 억누른 건조한 문장을 벽돌로 삼아 세워진다. 그러나 비통함이 배어 나오는 논문도 있다. 미셸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파토스가 출렁이는 글이다. 푸코는 17~18세기에 광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부랑자·범죄자들과 함께 격리되는 ‘대감금’ 시기를 거쳐 정신병원에 수용돼 치료라는 이름의 학대의 대상이 되는 역사를 추적한다. 보통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림과 동시에 사회질서 바깥으로 추방당하는 과정을 기술하는 내내 푸코의 문장은 미처 억누르지 못한 감정으로 붉어진다.

여기에 논문 한 편이 더 있다. <문화방송>(MBC) 기자 임명현씨가 쓴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는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인 문화방송 기자들에게 떨어진 추방과 배제와 수모의 시간을 증언하는 글이다. 보수정권과 결탁한 문화방송 경영진은 파업 이후 기자·피디·아나운서 160여명을 징계했다. 해고·정직·부당전보가 뒤따랐다. 징계당한 이들 가운데 91명은 아직껏 본업에 복귀하지 못했다. 경영진은 경력사원을 뽑아 빈자리를 채웠다.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 아래서 기자들은 ‘잉여적 주체’ 아니면 ‘도구적 주체’로 떨어졌다. 본업에서 배제된 이들은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폐기물 취급을 받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경영진이 요구하는 뉴스만 제작하는 반저널리즘의 도구가 됐다. 잉여적 주체든 도구적 주체든 주체성을 박탈당한 주체라는 점에선 똑같다.

푸코 자신이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광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듯이, 2012년 파업에 참여한 임명현씨도 파업 이후 잉여가 되거나 도구가 된 사람들에게 깊은 동류의식을 느낀다. 푸코는 고문서들을 탐사해 철창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침묵의 고고학’을 실행했다. 푸코가 발굴한 문서는 감금된 이들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그들이 벌거벗은 채 바닥의 차가운 습기를 막아줄 것이라고는 밀짚밖에 없는 곳에서 누더기만 덮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악랄한 간수들에게 내맡겨진 상태에서 잔혹한 감찰에 시달렸다.” 임명현씨의 논문은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한 문화방송 내부의 미시정치를 기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고발한다. “한참 기사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방이 붙었고 뉴스시스템에서 로그아웃된 거예요.” “이게 공포정치잖아. 다 내쫓겠다는 거. 계속 경력들 뽑는 것 보면서 아, 다 갈아치울 생각이구나.”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해고와 징계의 칼날이 날아든다. 독재시대의 ‘보도지침’이 기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앉는다. 내가 생산한 기사가 나를 짓누르는 ‘자기 소외’가 일상이 된다.

2016년 12월28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사옥에서 문화방송 기자협회·영상기자회 소속 구성원들이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화방송 기자협회·영상기자회 제공
임명현씨의 논문은 암울함의 색조로 물들어 있지만 결론까지 암울하지는 않다. 문화방송 노조가 2012년에 보여준 저항적 실천의 결기가 다 증발하지 않고 여전히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문을 쓰는 것 자체가 저항적 실천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문화방송 노조는 방송문화진흥회가 새 사장을 세워 ‘박근혜 부역 방송’을 계속하려는 기도에 맞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지난 10년을 지배해온 비정상이 철거되는 날 문화방송의 비정상적 억압 시스템도 정상화할 것이다. ‘잉여’도 ‘도구’도 주체다운 주체로 돌아올 것이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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