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23 16:57
수정 : 2017.02.23 23:41
정남구
논설위원
1조원은 얼마나 큰 돈일까?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리가 사석에서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예수께서 태어나 지금까지 사시면서 하루에 100만원씩 날마다 썼어도 다 못 쓰셨을 것이다.” 계산해 보니 맞다. 2017년 동안 하루 100만원씩 7362억원을 쓰고도, 앞으로 723년간 더 쓸 수 있는 돈이 1조원이다.
우리나라에 재산이 1조원 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재벌닷컴이 지난해 말 집계한 이 부회장 보유 상장사 주식 가치는 6조7천억원에 이른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보다도 2조원가량 많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모아 그런 거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자본주의는 ’투자’에 따르는 보상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기업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키우고, 그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 보유 주식 가치가 올라 부자가 되는 것을 긍정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그런 사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론 이 부회장이 투자를 잘해서 돈을 번 적이 없다. 정보기술(IT)산업 붐이 일던 시절 이(e)삼성에 대한 투자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 부회장의 재산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한테 61억원을 증여받아 16억원의 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넘겨받으면서 늘기 시작했다. 1조원 넘게 돈을 벌었다. 이어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헐값에 넘겨받아 또 큰돈을 벌었다.
다른 주주의 돈을 가로챈 것이나 마찬가진데, 법질서는 무력했다. 이 부회장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고, 그의 손에 들어간 주식(돈)은 합법적인 것이 됐다. 단지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 사채 건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을 뿐이다. 그것도 형의 집행은 유예됐다.
이 부회장이 최근 구속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뇌물을 건넨 혐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삼성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게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정하고, 국민연금의 도움으로 합병을 성사시킨 것이 탈이 났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속에서 이 부회장은 이미 유죄다. 근면한 노동, 성실한 자기계발, 금욕으로 자본을 형성하고 창조적 파괴를 일구는 투자에서 보상을 받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부의 축적에 이 나라 사람들은 진절머리가 났다. 이 부회장이 무죄라면, 이 체제는 악랄하고 추악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서 세상이 곧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돈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권력이 된다. 재산보다 거대 재벌그룹에 대한 지배권이 더 큰 권력이다. 이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은 이 나라의 권부를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전후해 우리나라 수많은 언론이 이 부회장을 두둔하는 사설과 칼럼을 쏟아냈다. 앞으로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도 내겐 없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스스로 크게 달라지기를 나는 기대한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 나라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더는 참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강원도 태백에 갔다가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고 놀랐다. 아직도 별이 뜨는구나! 그렇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있을 뿐, 별은 언제나 떠 있다. 주변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많이 뜬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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