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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6 19:27 수정 : 2017.03.16 21:47

정남구
논설위원

“아이고 김 사장~~~.” “아이고 성 사장~~~.” 두 사람은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맞잡고 “반갑구만, 반가워요” 하며 앉았다 일어났다 한다. 2015년 11월부터 지난해 1월에 걸쳐 <티브이엔>(tvN)이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다.

작가가 포착한 당시 상황이 고용 통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의 수가 그해 사상 처음으로 5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취업자의 30%를 넘는 수치였다. “길을 가다 ‘사장님~’ 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시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영업자 가운데 종업원을 고용해 일하는 사장님(통계상으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수도 1988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엔 164만명(전체 취업자의 7.7%)까지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응팔>의 시절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전통적인 업태의 자영업자들에게는 최근 20년은 호시절이 아니었다. 카드 사용이 사실상 의무화되면서 소득이 거의 다 노출돼 세금이 늘어났고, 카드 수수료 부담도 커졌다. 도소매업은 대규모 유통업체와 온라인 쇼핑몰에 시장을 빼앗겼고, 외식업에선 기업형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덮쳐 가게 문을 닫은 이가 부지기수다. 내 주변의 가까운 친인척만 돌아봐도 ‘한때 사장님’이었던 사람을 열 손가락만으론 다 꼽지 못한다.

올해 들어 고용 통계를 보며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계절적 특성상 1월과 2월은 수치가 나쁘다. 그렇다고는 해도 2월 실업률이 2013년 4.0%에서, 2015년 4.6%로, 올해 5.0%로 계속 나빠지고 있으니 흐름이 좋지 않다. 물론 2010년 1월에도 실업률이 5.0%였고, 그때보다 고용률은 많이 상승했으니 ‘최악’이라 할 것까진 없다. 실업자 증가의 특징을 보니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학력은 중졸 이하, 종사자 지위별로는 임시근로자에 집중돼 있다. 전통적인 경기 대책(재정 정책)이 먹혀들 여지가 있다.

그런데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취업자 구성의 변화다.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소득이 괜찮은 일자리인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에 견줘 9만2천명(2.0%) 감소했다. 반면 자영업자가 21만3천명(4.0%)이나 늘어났다. 절반 이상은 영세자영업자다. 자영업자는 숙박 및 음식점업, 부동산업 및 임대업, 교육서비스업에서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1월엔 자영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16만9천명(3.2%) 늘어났는데, 2월에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이는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퇴직금에다 빚을 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 나타났던 바로 그 흐름이다.

2016년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557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1.2%다. 한 세대 전엔 열에 셋이었는데, 이제 열에 둘로 줄었다. 종업원을 두고 일하는 자영업자는 156만명(6.0%)으로 크게 줄지 않았는데, 영세 자영업자가 많이 줄었다. 이제 충분히 줄어든 것일까? 많은 통계가 그렇지 않다는 걸 시사한다. 자영업자 소득은 증가세가 미미하거나 감소하고, 자영업자 가계의 부채와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 심리와 소비 성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나도 모르는 게 아니네. 하지만 달리 길이 없더라고. 실업급여도 곧 끊기고….” 지난해 말 한 기업에서 퇴직한 친구가 결국 자영업에 나서기로 했다며 한 말이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다들 ‘외통수’에 걸려 있다. 친구는 간곡히 부탁했다. “절대, 나를 ‘김 사장’이라고 부르진 말아줘.”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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