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11 16:59
수정 : 2017.04.11 18:47
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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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종환 삼촌의 삼거리식당의 밥솥엔 늘 따뜻한 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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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들을 만날 거라 예상하고 그곳에 갔던 건 아니다. 이미 ‘끝난’ 싸움의 현장 아닌가. 힐링 목적의 짧은 여행, 우연히 그곳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고 마침 올레길에 위치했다. 바다를 향해 유난히 길게 뻗은 콘크리트 시설물을 가까이서 확인하고도 싶었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 아래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그곳, 강정마을 이야기다.
‘부당한 구상권 소송 즉각 철회하라’ ‘제2공항 공군기지 절대 반대’ 같은 플래카드를 지나 기지 반대 싸움 3605일째를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새로 지어진 군 숙소 건너편 천막에 6년차 강정 주민 방은미씨가 있다. 서울에서 꽤 유명한 연극연출가였던 그는 2011년 여름 강정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주민 30여명을 경찰 수백명이 에워싸고 공권력을 휘두르는데 너무 놀랐어요.” 2박3일 예정은 두달이 됐고, 그는 가족들에게 아예 강정 이주를 알렸다. “나중엔 엄마를 지지하게 됐다”지만 딸이 결혼하던 몇년 전까진 갈등도 적잖았다.
방씨는 매일 유튜브에 천막미사를 찍어 올린다. 주민들이 연행됐던 공사장 정문 앞에서 7년째 평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미사다. 강정에 간 그날도 사람들은 구럼비바위를 향해 두 손을 흔들며 ‘평화를 빕니다’라 외쳤다. 그 어떤 화려한 성전에서 나누는 평화의 기도가 이보다 절실할까.
2007년 4월 유권자 1050명 중 87명이 참석한 임시총회 뒤 기지 건설이 전격 결정된 이후, 방씨처럼 ‘신제주도민’이 된 이들이 적잖다. 지금도 30여명이 강정을 지키며 귤따기·김매기 등 노동을 하며 산다. 메뉴도 가격표도 없는 삼거리식당은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할아버지 대부터 강정에 살던 김종환씨가 “사람들 밥 한끼 먹이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며 시작한 일이다. 전국에서 밥과 김치가 답지했고 그가 따오는 고사리나 방풍초가 있으니 식재료를 살 일도 거의 없다. 커다란 식탁은 밥상이자 작업장이자 학습장이다. 지난해 공사장 진입도로라는 이유로 행정대집행 위기에 처했다가 인근 공유지로 옮겨 크기는 3분의 2가 됐지만, 늘 그득한 밥솥은 변함없다. 요즘도 하루에 한번은 꼭 모두가 둘러앉아 밥상을 나눈다.
김씨는 요즘 울화병이 났다. 기지 완공 뒤 매일같이 들려오는 군인들의 기합 소리와 군함이 내는 거대한 소리 탓이다. “신경성 위장염까지 생겼다”고 방씨가 말해줬다. 김씨는 해군이 공사 지연을 이유로 34억5천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구상권 소송 대상에도 포함됐다. 재산 상태에 따라 돈을 못 내는 이가 생기면 다른 대상자들이 그 몫까지 물어내는 연대책임 방식이란다. 싸움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마을에 해군은 또다시 갈등의 불씨를 던져놨다.
민군복합 관광항이라거나 우리 해군만이 사용할 기지라던 정부의 호언장담은 이젠 믿기가 어렵다. 지난 1월 미국 태평양함대사령관은 ‘바다의 사드’로 불리는 최신예 스텔스 구축함 줌월트를 제주에 배치할 뜻을 밝혔다. 지난달엔 성산읍에 건설 예정인 제2공항에 공군이 ‘남부탐색구조대’를 둘 가능성을 비쳤다. 크루즈터미널이라면서 방파제 안 수역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될 전망이다. 제주도의 군사기지화 가능성을 그저 소수의 과잉 경고로 치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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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가 ‘촛불혁명’이란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서각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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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경북 성주를 찾은 방은미씨(맨 오른쪽)와 김종환씨(왼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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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해군기지가 지어진 지 1년이 지나도 이들이 강정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방씨는 “평화를 위한 세계시민이라는 지향점이 생기며 삶이 바뀌었어요. 독립운동 중이니 소비를 조금 줄이면 먹고 자는 건 큰 문제 없고요”라며 웃었다. ‘촛불혁명’을 나무에 새기던 문정현 신부가 말했다. “이런 수많은 고통을 놔두냐고 한때 하느님을 원망도 했는데 촛불을 보며 싹 사라졌어.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걸려. 그래도 누군가 남아 지켜보고 증언은 해야지.”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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