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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3 17:43 수정 : 2017.08.04 09:49

김영희
논설위원

1980년, 30살 영어교사 이인옥씨는 대학원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논문을 쓰려고 1년간 아이들을 돌봤던 것이 인생을 바꿨다. “만 3살에서 4살 반 정도는 정말 하얀 도화지처럼 쭉쭉 빨아들여요. 유아교육의 무한한 가능성과 보람에 매력을 봤죠.” 강사로, 전문대 교수로, 유치원 월급 원장으로, 학교 기간제교사로 뛰면서 아끼며 생활했다. 틈만 나면 유치원 자리를 보러 다녔다. 2001년 서울 홍제동의 한 유치원을 인수하면서 마침내 오랜 꿈이 이뤄졌다.

직전 원장 비리 문제로 시끌하던 유치원을 인수해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내온 16년. 한양제일유치원은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의 공영형 사립유치원으로 재출발했다. 부모들 부담금은 국공립 수준인 한달에 5만원 아래, 교사 수는 2배 이상이 됐다. 교구와 시설도 새로 단장했다.

거저 얻은 지원은 아니다. 건물과 토지, 수익용 기본재산을 내놓고 세금을 물어가며 법인 전환을 했다. 외부 전문가들을 과반수 포함시킨 이사회도 출범했다. 이인옥 원장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2020년까지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 40%’라는 정부 정책에 반발해 얼마 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실력행사로 세미나를 무산시키고 ‘휴원 불사’를 외치는 터인데 말이다. “평생을 바친 일인데 이렇게 끝내긴 싫었어요. 유아교육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상관없었어요.” 주변 유치원, 어린이집들 경쟁 속에 원아 수는 급감 중이었다. 문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때 나온 공영형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20~30년 뒤엔 정부가 지원하고 유아교육을 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공부할 때 듣곤 했죠. 공영형이 그런 새 복지 형태의 하나라 생각했고요.”

지난 대선 안철수 후보가 ‘단설 유치원’ 발언 논란에 지지율이 훅 빠지기 시작한 데서 보듯, 유아교육의 공공성 문제는 우리 사회 ‘뇌관’이다.

“국공립 유치원 당첨은 로또, 괜찮은 사립 유치원은 부모에게 ‘갑’이에요. 단지 밖에 산다니까 ‘신청은 자유지만 거긴 셔틀버스 못 보낸다’고 노골적으로 밀어내는 곳도 있었죠.” 어린이집 대기번호 500번대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유치원을 뛰어다녔던 회사 후배는 “돈도 돈이지만, 그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둘째는 엄두가 안 났다”고 했다. 특히 요즘처럼 유치원들이 몇주씩 방학을 하면 방과후 과정이 의무화된 국공립이 아닌 경우, 맞벌이 부모는 초비상이다. 평소에도 “좀 빨리 오실 수 없나 보죠”처럼 눈치 주는 말에 눈물지으며 돌아서본 부모들, 주변에 줄섰다. 그러니 물으면 백이면 백, ‘닥치고 국공립’이다.

오랜 세월 유아교육의 역할을 민간에 떠넘겨온 사회에서 이 구조를 단시간에 역전시키기란 쉽지 않다. 전국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은 24%, 서울은 17%에 불과하다. 유보 통합은 갈 길이 멀고 단설은 예산 따기와 부지 확보가, 최소 교실 6~7개는 필요한 병설은 초등학교 협력 구하기가 만만찮다. 공영형이 정답이란 말은 아니다. 아직 통합매뉴얼도 완성되지 않은 시작 단계다 보니 크고 작은 혼란이 있다. 투명성만 확보하면 사학 특성을 살린다는 취지였지만, 막상 현실에서 사립의 자율성이 어디까지인지는 서로 시각차도 크다.

분명한 건 단설이든 병설이든 공영형이든, 공공성을 더하는 일이라면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올해 신생아가 36만명으로 사상 첫 30만명대가 된다는 추산에 떠들썩하다. 여성들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해도 안 되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이 낳을 수 있는 나라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지난해 한 워킹맘이 블로그에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라고 쓴 글이 일본 사회를 흔들었다. ‘한국 죽어라’라는 말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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