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7 18:15
수정 : 2018.12.26 22:42
안재승
논설위원
‘8·2 부동산 대책’의 약효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17일 발표한 ‘8월 둘째 주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값이 2주 연속 떨어졌다. 지난주 -0.03%에 이어 이번주엔 -0.04%로 하락 폭도 커졌다. 서울 아파트값이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1년5개월 만이다.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다주택자들이 급매물을 내놓으면서 강남권의 하락 폭이 컸다. 호가가 1억원 이상 떨어진 매물들이 나오고 있지만 매수자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풍선효과도 아직까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치솟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한풀 꺾였다. 불붙었던 투기 심리가 일단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한겨레>가 지난 11~12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8·2 대책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2%였다. 반대는 1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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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서울의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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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속단은 금물이다.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규제가 풀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워낙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신앙에 가깝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려면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5년 임기를 쭉 가야 한다. 벌써부터 흔들기가 집요하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8·2 대책의 효과는 길어야 6개월이다” “실물경기까지 걷잡을 수 없이 얼어붙을 수 있다” “이 정권이 끝나면 집값이 폭등할 것이다” 등등. 정부는 시장이 다시 이상기류 조짐을 보이면 지체 없이 추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심리전이 중요하다. 정부 의지가 의심받을 때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집값이 들썩인다. 정부가 빈틈을 보이면 투기세력에 당한다. 8·2 대책이 먹히고 있는 것은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혹여 경기가 나빠지면 이전 정부들처럼 유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부양 수단으로 부동산을 동원해선 절대 안 된다. 이전 정부들은 시장이 과열되면 투기 대책을 내놓고 진정되면 규제를 풀어 경기 부양의 불쏘시개로 썼다. 노무현 정부만 예외였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널뛰기식 대책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국가경제를 멍들게 한다. 빚내서 집을 사라고 했던 박근혜 정부의 2014년 ‘7·24 대책’이 대표적이다.
투기 억제보다 어려운 일이 서민 주거 안정이다. 규제만으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값이 너무 올라 웬만큼 떨어져선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어렵게 됐다. 집값에 거품이 잔뜩 끼면서 ‘주거 사다리’가 무너졌다. 단칸방 월세에서 시작해 안 쓰고 안 먹고 열심히 모아 독채 전세로 옮겨가고 마침내 내 집을 장만하는 해피엔딩은 이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부동산 대책을 넘어서는 주거복지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저렴하고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서민층의 주거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공공 임대주택을 늘리고 민간 임대주택 시장을 양성화해야 한다. 임대주택 등록제를 통해 집주인에겐 적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대신,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고 세입자의 거주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줘야 한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부동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5년을 처음처럼 한결같이 가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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