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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4 17:59 수정 : 2017.08.24 20:25

임석규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8·15 경축사는 다분히 미국을 향한 발언이다. 일단 운전대 잡고 시동은 건 모양새인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이 운전대를 넘길 뜻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정보 분야 고위급 관료가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에 험한 표현을 써가며 불만을 표출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냉·온탕을 넘나들어 속내를 종잡을 수 없다. 선제타격론, 예방타격론, 예방전쟁론 등 우리 뜻과 무관하게 배달되는 ‘워싱턴발 북한 공격론’에 정신 못 차릴 지경이다.

미국 외교의 거물이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엔 한국이 미국에 어떤 존재인지 노골적으로 묘사돼 있다. ‘극동의 조그만 반도 반쪽’의 전략적 가치는 유라시아를 노리는 미국이 내려앉을 ‘횃대’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아도 어디까지나 ‘대리운전자’쯤으로 생각될 거다.

정말로 운전대를 넘겨받았다면 사드 배치에 이렇게 무기력할 수 없다. 24일 반쪽짜리 한-중 수교 25돌 행사는 어그러진 한-중 관계의 단면을 상징한다. 기업 피해는 롯데뿐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도 상반기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2.4% 줄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따로 없다. 미국은 이 와중에 한국을 자신 쪽으로 더욱 밀착시켰다. 미국 입장에선 사드 배치야말로 유라시아 체스판에 둔 ‘신의 한 수’였다.

헨리 키신저를 필두로 최근 미국 외교·안보 주류 진영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스티브 배넌이 꺼낸 주한미군 철수론은 ‘미국 고립주의’ 진영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한다. 동북아 세력 균형추로 작용해온 주한미군의 철수가 실제로 추진되면 동북아 세력 판도는 크게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국제질서가 재편될 경우 위험에 빠질 국가로 8개국을 지목했는데, 조지아와 대만에 이어 한국을 3번째로 꼽았다.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당연히 미국 전략이 대외 개입 축소로 전환되고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게 옳다. 그런데 그저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의 군사력에만 의존하자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으니 이제 미군 전술핵도 재배치하자고 한다. 자유한국당 당론이요, 보수 진영의 대체적 정서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얘기다.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로 안 된다. 사드 배치는 빨리 끝마치고 전시작전권 환수는 없던 일로 하자. 햇볕도, 대화도 안 된다. 내친김에 미국 전술핵도 재배치해보자.”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걸까. 한반도 운전대 잡을 생각 아예 말라는 거다. 미국 강경론에 장단이나 맞추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해낸 게 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론자였다. 국방 예산을 크게 증액했고 전시작전권 환수도 추진했다.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은 ‘균형자론’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 생각도 이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우리 운명 우리가 헤쳐가야 한다는 의지를 절제된 형태로 표현한 게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하면 한-미 동맹 균열 낸다고 질타하고 나약하다고 힐난한다. 한반도 운전자 되기, 참으로 어렵다.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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