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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7 18:17 수정 : 2017.12.08 09:06

안재승

논설위원

국민연금은 올해 모두 767차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2826건의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찬성 의견이 2452건(86.8%), 반대가 367건(13%), 기권이 7건(0.2%)이었다. 십중팔구 찬성을 한 셈이다.

국민연금은 운영자산 규모가 600조원이 넘는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9월말 기준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275곳에 이른다. 10% 이상도 84곳이나 된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지분도 9.7%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민연금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재벌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는 재벌 총수 일가의 후계 승계 과정에 동원되기까지 했다. ‘주총 거수기’니 ‘찬성 자판기’니 하는 오명이 따라붙는 이유다.

그래픽 / 김지야
이런 국민연금이 앞으로는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위원회가 1일 회의를 열어 내년 하반기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지침이다. 저택의 집안일을 맡은 집사(스튜어드)처럼 기관투자가도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을 대신해 주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보고하라는 가이드라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기관투자가들이 금융회사 경영진의 잘못을 제대로 감시·견제하지 못한 탓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반성에서다. 지금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20개국으로 확산돼 국제 규범으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우리나라는 금융위원회가 중심이 돼 지난해 12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 제정됐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13개 기관투자가가 도입하는 데 그쳤다. 국민연금의 도입 발표를 계기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같은 다른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의 참여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보수언론은 ‘연금 사회주의’라며 색깔론을 덧씌우고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경영의 자율성을 해치고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황제경영과 정경유착 같은 국내 기업의 고질적 문제들이 견제받지 않는 대주주의 독단과 전횡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도입을 추진하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일반적인 주주권 행사 수준으로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단계이다. 미국과 일본에선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사외이사 추천권을 행사하고 주주 소송에 나선다. 세계 5대 연기금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투자 기업 중 문제 기업의 목록을 ‘포커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작성해 공개하고 있다.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실적이 나쁜 기업의 명단을 시장에 공개해 압박을 가하고, 이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면 경영 투명성이 제고되고 수익성도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재계가 애용하는 말 가운데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입맛에 따라 골라 먹겠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국민연금, 내년 ‘스튜어드십 코드’ 공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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