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19 17:49
수정 : 2017.12.19 19:03
권태호
논설위원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했다. 2008년 4월16일 이 대통령이 워싱턴을 처음 방문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영접 나왔다. 다음날,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공항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나갔다. 앞서 15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도착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부가 공항에 나갔다. 당시 청와대는 샌드위치 신세를 피하려고 일정을 조절하려 애썼다. 그러나 “미국이 선택 폭을 넓게 주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로서 비판 의식이 부족한 탓인지, 그때 이를 ‘홀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 내내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하지만 비판이 거셀수록, 합리성과 상식을 떠나면 스스로 생명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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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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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놓고 ‘홀대론’ 프레임이 심했다. 차관보 영접을 문제 삼았다. 대개 한국 대통령 방문 시, 중국에선 차관급이 맞는다. 그런데 현재 아시아 담당 부부장(차관)이 공석이다. 그래서 차관보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방문 때,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영접했던 것과 비교한다. 일본-대만-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를 잇는 미국의 대중 봉쇄선 구축에 맞서려면, 중국이 필리핀을 중립 위치에라도 놓아야 한다. 그래서 두테르테 방문 시 왕이 영접은 전략적 파격이었다. 이를 비교해 방중 홀대론을 키우는 건 온당하지(fair) 않다.
‘혼밥’ 논란. 방문국 인사와 한 번이라도 더 식사하는 게 나음은 물론이다. 정상과 업무오찬, 만찬 등 두 번 식사할 때도 많다. 이번에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찬 한 번, 리커창 총리와는 오찬이 없었다. 이게 빌미가 돼 ‘혼밥’ 프레임이 잡혔다. 하지만 ‘혼밥’ 사례에서 중국인의 마음을 얻은 서민식당 식사는 제외해야 했다. 오히려 앞으로도 순방국마다 이런 ‘혼밥’은 더 자주 봤으면 한다. 비판은 ‘식사 횟수’보다 ‘대화 내용’에 집중해야 했다.
핀셋처럼 집어내자면, ‘홀대론’ 공격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우리 쪽은 총수 등 오너급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중국 쪽은 경영 담당 사장(CEO) 등이 나와 격이 안 맞았다. ‘기자단 폭행’도 미국 기자였다면, 중국이 저렇게 나올까라는 의구심이 인다. 문 대통령이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표현한 것도 ‘과공’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이번 방중은 최악의 한-중 관계에서 출발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시 주석은 몇 번이나 ‘한반도 사드 배치는 중국 전략이익과 충돌돼 양보할 수 없다’ 했다. 그런데 배치됐다. 그러다 ‘3불’을 조건으로 ‘경제 조처’를 해제키로 했다. 이미 배치된 건 어찌한다는 말은 없다. 이 상태에서 한국 대통령이 오는데, 버선발로 달려나가 파안대소할 수 있겠는가. 중국으로선 국내 여론을 위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기술적으로, 대개 몇 달 전부터 준비하는 정상회담이 이번엔 다소 서둘러 준비한 탓에 뭔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군데군데 노출됐다. 우리 쪽은 올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수교 25주년, 문 대통령 취임 첫해를 넘겨선 안 된다는 상징성 외에도 내년으로 가면 한국은 2월 평창올림픽, 중국은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준비 등으로 계속 미뤄질 수 있다. 무엇보다 당장 우리 기업은 하루가 급하다. 이런 배경을 싹 무시한 채 ‘이건 이래서 홀대, 저건 저래서 홀대’라고 한다.
외교에서 의전이란, 어떨 때는 본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라리 ‘북한 제재를 더 강력히 요구하라’, ‘중국과 가까워지려다 미·일과 멀어지는 것 아니냐’ 등 다른 시각에서 비판하는 건 논쟁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혼밥’, ‘공항 영접’ 논란 등은 예송논쟁과 무엇이 다른가.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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