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3 17:47
수정 : 2018.01.23 19:02
정남구
논설위원
모든 대책은 미봉책이다. 우리는 말로는 ‘근본 대책’을 쉽게 입에 올리지만, 속으로는 꺼린다. 한꺼번에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에게까지 청구서가 오지는 않기를 바란다. 미봉책은 모든 정책의 숙명일지 모른다. 미세먼지 대책도 그런 경로를 걸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6월3일 정부가 미세먼지 관리 ‘특별 대책’을 발표했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미세먼지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환경 난제임을 인식하고, 관계 부처와 협력하여 총력을 다해 대응해나가겠다”고 했다. 경유차·건설기계 관리를 강화하고,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고, 대기오염이 극심한 경우 부제 실시 등 자동차 운행 제한을 시행하겠다는 내용이 뼈대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대기오염 정도는 계속 나빠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해 5월 전국 하늘이 뿌옇게 덮였다. 정부는 9월26일 미세먼지 관리 ‘종합 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꽤 과감한 조처를 담았다. 2022년까지 국내 미세먼지 발생을 31.9%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감축 목표의 갑절이었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 7기를 폐쇄하고, 아직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일부를 다른 연료를 쓰도록 전환하고, 노후 경유차(286만대)를 임기 내 77% 조기 폐차하기로 했다. 미세먼지 대책에 7조2천억원을 쓰기로 했다. 3~6월에, 노후 화력발전소 5기의 가동을 멈추고,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차량 2부제와 사업장 운영시간 조정 등 강제저감 조처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미세먼지 상태는 아직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경기·인천의 미세먼지 오염 수준이 모두 ‘나쁨’이고 다음날도 ‘나쁨’으로 예상될 때 발동하는 미세먼지 강제저감 조처가 지난해 12월30일에 이어, 1월엔 15·17·18일에 잇따라 시행됐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본다. 정부 대책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고, 시민인 당신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과연 어떤 짐을 나눠 질 것이냐는 질문이 마침내 던져진 것이다.
시민의 불편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의 생각은 용감한 도전이다. 서울시는 비상저감 조처가 시행될 때 민간 차량에 대해서도 2부제 운행을 시장이 강제할 수 있도록 국회에 법을 고쳐달라고 했다. 또, 배기가스 배출 허용 기준에 따라 자동차를 0~6등급으로 나누어 5~6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라는데 마냥 좋아할 사람은 없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해 12월 전국 1천명을 대상으로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차량 2부제 운행 참여 의향을 물었더니, 72.2%가 동참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최근 밝혔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수도권에서 출퇴근용으로 매일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한테만 물으면, 찬성이 줄어들 것이다. 설문에 대답할 때 ‘좋은 사람’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까지 고려하면 실제 반대할 사람은 설문조사에서 불참하겠다고 대답한 27.8%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시민이 불편을 감수하는 대책은 정부와 자치단체에 매우 강한 문제해결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동참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열쇠다. 우리는 맑은 하늘을 하루빨리 되찾기 위해, 짐을 기꺼이 나눠 질 것인가? 지금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지만, 역사의 시험대에 오른 것은 우리 시민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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