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1 18:29
수정 : 2018.02.01 19:07
안재승
논설위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월18일 주거복지협의체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재건축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구조적 안전성 문제가 없는데도 사업 이익을 얻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문제가 있다”며 “건축물의 안전성이나 내구연한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정부가 재건축 연한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선 정부가 각종 대책에도 강남 집값이 잡히지 않자 ‘충격요법’을 동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일주일 뒤인 2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재건축 연한 문제와 관련해 “강남보다 오히려 강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금으로선 정해진 정책이 아니며 부정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상당히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은 정부가 풍선효과를 우려해 한발 뺐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선 정책 혼선이라고 비판했다.
|
그래픽 / 김승미
|
박근혜 정부가 2014년 9월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9·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참여정부의 재건축 규제를 대폭 풀었다.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했고,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어도 살기 불편하면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했고, 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도 축소해줬다. 또 이명박 정부가 2년간 미룬 ‘재건축 부담금’ 부과도 2017년까지 3년 더 유예했다. 재건축을 돈이 되는 알짜배기 사업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재건축 추진을 망설이던 아파트 단지들이 앞다퉈 뛰어들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김현미 장관이 재건축 연한 문제를 불쑥 꺼낸 것은 경솔했다. 재건축 과열은 규제를 한두 개 부활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임기응변식 뒷북 대책으로는 결코 투기 수요를 진정시키지 못한다.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는 냉온탕식 처방은 정책 신뢰를 떨어뜨리고 투기세력의 내성만 키울 뿐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인정해주는 현행 아파트 재건축 사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김동연 부총리가 풍선효과를 걱정하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근시안적 태도다.
재건축의 원래 취지는 불량 주택을 고치고 노후된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공적 목적에 있다. 그러나 용적률 상향 특혜와 과도한 분양가 책정 등 재건축 과정에서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면서 수익사업으로 변질됐다. 건물의 ‘물리적 노후도’가 아닌 ‘경제적 노후도’가 재건축의 판단 기준이 돼버렸다. 국토부가 최근 공개한 서울 강남 4구 재건축 아파트의 조합원 1인당 부담금 예상액이 평균 4억4천만원이다. 부담금은 개발이익의 50%가량을 부과한다. 역으로 말하면 개발이익의 50%를 투자 수익으로 보장받는 셈이다. 여기에 투기 수요와 재건축 수주를 위한 대형 건설사들의 진흙탕 싸움까지 가세하면서 재건축 시장이 ‘거대한 투기판’이 된 것이다.
재건축 연한을 채웠다고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는데도 수천세대 아파트를 한꺼번에 부수고 그곳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노후된 주거공간의 개선은 필요하지만 투기를 부추기고 자원 낭비를 초래하는 지금의 재건축 방식은 답이 아니다.
정부가 재건축과 관련한 기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 뒤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거나 일회성 대책을 남발한다면 ‘투기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질 수밖에 없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개발이익만 수억대, ‘투기판’ 변질된 강남 재건축
▶ 관련 기사 : 강남이 사고 강남이 올리는 강남 아파트값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