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젊은 날 가정교사를 전전한 헤겔은 여유가 없어 양말을 기워 신기도 했던 것 같다. 젊은 철학자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찢어진 양말은 기워 신으면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정신은 찢어진 상태를 극복하면 찬란해진다.” 이 ‘찢어진 양말’의 모티프가 자라나 뒷날 <정신현상학>이 됐을 것이다. 정신은 자기의식을 갖추게 되면 체세포가 분열하듯 스스로 갈라진다. 자기 내부에서 찢겨 피투성이가 된 정신은 불화와 상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상처를 극복하고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 헤겔의 정신은 개인의 정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정신들의 집합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공동체도 겨레도 개인의 의식처럼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면 찬란해진다. 그러니 헤겔의 찢어진 양말, 찢어진 정신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을 떠올려봄직도 하다. 일흔 해 전인 1948년 2월10일 백범 김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3천만 동포에게 울며 고함’을 발표했다. 반도가 두 동강 날 위기 앞에서 백범의 말은 통절하게 울렸다. “마음속의 삼팔선이 무너지고서야 땅 위의 삼팔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백범은 그해 4월19일 삼팔선을 넘어 북행길에 올랐으나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다. 김구의 뜻은 속절없이 꺾였고 남과 북은 참혹한 골육상쟁을 벌였다. 삼팔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뒤에도 반목은 끊이지 않았다.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김영삼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 말은 김영삼이 정치인으로서 남긴 가장 숭고한 말일 것이다. 김영삼의 이후 행보는 스스로 뱉은 말을 배반했지만, 이 말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집권기는 분단 70년사에서 남과 북이 통일에 가장 가까이 간 때였다. 남북의 정상은 손을 맞잡고 서로 포옹했다. 통일 한반도의 토대를 닦고 남북협력의 길을 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불어닥친 한파는 짧은 화해를 시기하듯 애써 키운 꽃들을 휩쓸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뤄낸 성과들은 흩어지고 뿌리가 뽑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 반동과 역풍이 남긴 유산을 물려받았다. 겨레를 공멸로 몰아넣을지도 모를 이 유산을 청산하려면 한반도 남북 모두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지혜와 인내와 아량이 필요하다.
지난 4일 오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평가전이 열리는 인천시 연수구 인천선학국제빙상장 앞에서 시민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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