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2.27 18:06 수정 : 2018.02.27 19:06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아는 사람들이 다 감옥에 간 것 같았다. 한참 전, 옛날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다 느낀 일이다. 정치 쪽 취재원 상당수가 교도소에 있거나, 갔다 왔거나, 재판을 받고 있었다. 최근에도 또 여럿이 기소·구속·소환됐으니, 그런 느낌은 더하다.

검사들도 비슷한 기분이겠다. 현직 검사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일이 잇따르더니, 올해 들어선 조직 내부를 겨눈 검찰 수사가 여러 갈래로 동시 진행 중이다.

술렁임은 피부로 느껴진다. 검사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긴급체포된 날,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동료 검사가 무섭게 느껴지는 날”이라는 글이 올랐고 지지 댓글이 여럿 달렸다. 수사 대상이 된 검사만도 10여명이고 사무실이 압수수색된 것도 10여 차례다. 앞으로 더 늘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치인들의 횡액은 이권과 유혹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겠다. “국회의원이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란 말처럼 정치를 하다 보면 법을 위반하는 상황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쥐고 있는 권력이 클수록 권력에 취하기 마련이고, 그 칼에 베일 위험도 커진다.

검찰이 지금 겪는 ‘전례 없는 사태’도 마찬가지다. 수사에서 기소, 형 집행까지 형사절차 전반을 장악한, 막강한 검찰 권력이 어느새 ‘괴물’이 된 탓에 벌어진 일들이겠다.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만 해도 검찰 권력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건을 왜곡한 생생한 사례다. 지검장부터 대검까지 검찰 지휘부는 사건 실체를 무시한 채 수사 대상을 ‘조정’하고 기소 범위를 ‘조율’했다.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로 볼 일은 아니다. 아무런 견제도 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는 검찰 조직이 앞으로 또 언제든 저지를 수 있는 일탈과 해악이 바로 이럴 것이다.

‘검사 성추행’ 사건은 견제 없는 권한 행사가 일상화된 검찰 조직의 뒤틀린 내면이다. 그 이후의 ‘인사 불이익’은 인사 권력으로 조직을 통제해온 ‘귀족 검찰’의 내부권력 작동방식 그대로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검사들도 그렇게 당했다. ‘최인호 변호사 검찰 로비’ 의혹은 검찰 권력이 유혹에는 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전관, 동기 따위를 앞세운 로비에 현직의 검사들은 방조를 넘어 쉽게 공범이 됐다. 권력에 젖다 보면 그렇게 죄의식까지 마비되는 모양이다.

검찰은 이들 사건 수사를 통해 자정능력을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의 기록 등 그동안 내놓은 자체개혁 방안도 여럿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성싶지 않다. 검찰의 ‘셀프 수사’로는 지금의 참담한 사태가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될 수 없다. 문제의 뿌리가 검찰의 과다한 권한에 있다면, 뿌리부터 치유하는 게 옳다.

상황은 거꾸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특별수사의 총량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지만, 검찰 역량이 집중된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특별수사 부서를 중심으로 되레 덩치를 키웠다. 검찰의 직접수사와 수사지휘를 제한하겠다는 정부 방침과 달리, 법무·검찰 개혁위가 밝힌 검찰개혁 방안에는 개혁의 핵심인 권력 분산은 찾기 어렵고 검찰 수사의 현실을 크게 바꾸는 내용도 없다. 검찰은 경찰 수사 지휘 대신 경찰에 수사를 요구하고, 지금처럼 경찰 사건을 모두 송치받아 사건 종결과 기소를 결정한다. 검찰 직접수사 범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견제는 여전히 미약하고, 권한은 사실상 그대로다.

화근은 과도한 권한 독점이다. 이를 덜어내고 도려내지 못하면 참괴한 사태는 또 재발할 수 있다. 그게 두렵다면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yeop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