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1971년 6월13일 <뉴욕 타임스>가 내보내기 시작한 ‘<펜타곤 문서> 보도’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를 뒤흔들었다. 전임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비밀리에 작성한 <펜타곤 문서>는 역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국민을 속였음을, 이 전쟁이 한 편의 거대한 기만극임을 폭로했다. 닉슨은 <뉴욕 타임스> 보도를 막으려고 위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펜타곤 문서>를 따로 입수한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의 바통을 이어받고 경쟁지들이 연합 공격에 나서자 상황이 뒤집혔다. 위기에 몰린 닉슨을 구한 것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온 소식이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 특별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7월9일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와 만났다. 닉슨은 이듬해 2월 중국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를 열었다. 닉슨은 그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낙승했다. 닉슨의 내부 위기가 미-중 관계 정상화를 촉진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해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닉슨 시절과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초기부터 러시아·섹스 추문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한때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트럼프의 위기는 더욱 커졌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대통령 자리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자신의 목을 겨누는 특별검사의 칼과 언론의 계속되는 추문 폭격에서 탈출해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지렛대로 트럼프가 선택한 것이 북한이다. 과거의 닉슨처럼 트럼프는 적국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70년 동안 지속된 북-미 관계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 도덕적으로 취약한 개인이 위기에 몰려 ‘세계사적으로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아이러니다.
칼럼 |
[아침 햇발] 트럼프 아이러니와 ‘역사의 간계’ / 고명섭 |
논설위원 1971년 6월13일 <뉴욕 타임스>가 내보내기 시작한 ‘<펜타곤 문서> 보도’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를 뒤흔들었다. 전임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비밀리에 작성한 <펜타곤 문서>는 역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국민을 속였음을, 이 전쟁이 한 편의 거대한 기만극임을 폭로했다. 닉슨은 <뉴욕 타임스> 보도를 막으려고 위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펜타곤 문서>를 따로 입수한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의 바통을 이어받고 경쟁지들이 연합 공격에 나서자 상황이 뒤집혔다. 위기에 몰린 닉슨을 구한 것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온 소식이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 특별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7월9일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와 만났다. 닉슨은 이듬해 2월 중국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를 열었다. 닉슨은 그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낙승했다. 닉슨의 내부 위기가 미-중 관계 정상화를 촉진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해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닉슨 시절과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초기부터 러시아·섹스 추문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한때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트럼프의 위기는 더욱 커졌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대통령 자리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자신의 목을 겨누는 특별검사의 칼과 언론의 계속되는 추문 폭격에서 탈출해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지렛대로 트럼프가 선택한 것이 북한이다. 과거의 닉슨처럼 트럼프는 적국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70년 동안 지속된 북-미 관계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 도덕적으로 취약한 개인이 위기에 몰려 ‘세계사적으로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아이러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