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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2 17:54 수정 : 2018.06.12 19:10

김영배
논설위원

남북한 간 경제협력의 역사를 나무라고 한다면, 그 뿌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주도의 ‘소떼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꼭 20년 전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진 1001마리의 소떼는 같은해 11월 금강산관광 사업 개시라는 오른쪽 줄기와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이라는 왼쪽 줄기로 뻗어나갔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떼 500마리와 함께 1차로 방북길에 오르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소떼 방북을 역사의 망원경으로 조망하면 1개의 점처럼 보이지만, 넉달의 시차를 두고 마무리되는 동안 남북 사이에는 악재가 이어졌다. 북한 잠수정 동해안 침투(6월), 무수단 미사일 발사(8월), 첫 인공위성 궤도진입 발표(9월) 따위가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다. 당시 남한은 외환위기 사태를,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2차로 소떼 방북이 이뤄지고 경협으로 발전했다는 건 지금 돌이켜봐도 경이롭다.

현대그룹 자료를 보면, 2008년 7월 사업 중단 때까지 10년 동안 금강산을 오간 관광객은 195만5951명에 이른다. 금강산관광의 줄기에서 이듬해엔 개성관광 개시와 백두산관광 합의라는 가지가 돋아났다. 금강산 사업은 육로관광 실현 뒤인 2005~2007년 3년 연속 영업이익을 거둬 수익성을 검증받기도 했다. 개성공단 조성 및 가동 또한 그 바탕에서 이뤄졌다. 금강산관광이 ‘작은 통일’의 시작이었다면 개성공단 조성은 ‘상생의 시대’를 연 전환점이었다. 2016년 2월 공단 전면 폐쇄 전까지 진출해 있던 남쪽 기업은 124개, 여기에 고용된 북쪽 노동자는 5만4천명에 이르렀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올해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12일엔 마침내 북-미 정상도 손을 맞잡음에 따라 절단된 남북 경협의 줄기가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해봄직하다. 이미 싹이 보인다. 이달 7일 북한의 협조로 ‘유라시아 노선’을 가진 국가들 모임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는 숙원을 이뤘고, 8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이 방북해 개성공단 시설을 점검했다. 지금껏 이뤄진 경협에선 경제가 앞장서 닦은 길을 정치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적 해빙이 앞서 경제적 교류를 이끌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불거질 수 있는 게 통일비용 논란이다. 이미 시비를 일으킬 빌미가 제공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때 대북 지원과 관련해 “나는 미국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에선 ‘거 봐라, 우리는 봉 노릇만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적정한 비용은 쓰임새에 따라 투자가 된다. 소떼 방북의 주역 정주영 회장이 통일비용 논란에 대해 생전에 남긴 말이 있다. “왜 엄청난 분단비용은 생각 못해? 매년 늘려야 하는 국방비 부담과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봐.”(<이봐, 해봤어?>, 박정웅 지음)

소의 평균수명이 15~20년이라고 하니 20년 전에 북으로 올라간 소떼 대부분은 생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후손들이 북한 어딘가에 남아 경협의 꿈을 잇고 있을지 모른다. 1차 소떼 방북 때의 암소 250마리 중에서 90마리가 임신한 상태였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말이다.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프랑스의 기 소르망), ‘핑퐁외교에 견줄 황소외교’(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평을 들은 소떼 방북에서 비롯한 남북 경협의 길이 넓어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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