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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4 17:48 수정 : 2018.09.05 15:46

김영희
논설위원

1년여 뒤를 예언한 걸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 뒤 김상곤 장관의 취임사를 다시 읽었다. “안 되는 백가지 이유보다 이행 가능한 단 한개의 가능성을 찾아라” “소통과 여론을 빙자한 두리뭉실한 눈가림용 정책을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 말라”는 구절은 아이러니했다. 무성한 말대로 그 어떤 ‘윗선’의 압력이 있었든, 관료에게 휘둘렸든, 김 장관 스스로 자신의 경고를 지키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50대 첫 여성 부총리라는 상징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자를 둘러싼 여론지형은 썩 호의적이지 않다. 청와대 게시판엔 그가 ‘노동자 편향’이라며 지명철회 요구가 올랐다. ‘전교조와 한통속’ 논리를 들이대며 “학교가 이념·정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이도 있다. 이런 이념공세보다 심각한 건 ‘이제 개혁은 포기하고 관리형 모드로 간다는 신호’라며 교육계 안팎에 퍼진 냉소적 분위기다.

김 장관의 실패와 경고가 반면교사가 될까. 유 후보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 방향이 보이지 않고, 분노의 원인도 제대로 짚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22학년도 대입개편 공론화와 정책숙려제 1호인 학생부 개선의 모순된 결론이 한 사례다. 정시확대 여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건만, ‘금수저 전형’ 논란의 핵심인 비교과 영역에 대한 근본처방 없이 서술량의 미세 조정에 그쳤다. 학종·수능·내신·고교체계 등이 고리처럼 맞물려 있는데 큰 그림 없이 개별 사안을 공론에 부친 결과다.

사실 ‘정시 30%’의 실질적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1318대학진학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직접 영향을 받을 대학은 전국 30곳, 그중 상위권은 3곳이다. 뒤늦게 공부에 철드는 학생들도 있으니 정시의 일정 유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의미여야 한다. 20년 넘은 수능 출제는 한계에 달했고, 새 유형이 나와도 ‘1타’ 학원강사들이 ‘해체’해 유사 문제들을 무한반복 연습시킨다. 여기에 새 교육과정 전제와는 정반대로 선택과목을 대폭 수능에 넣었으니, 가중치나 난이도를 두고 극심한 혼란과 눈치 보기는 불 보듯 뻔하다. 이건 교사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학원이 훨씬 낫다. 요즘 매일 서울 대치동에선 예비 고1 설명회가 성황이고, 특목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동력을 잃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공교육 퇴행의 시그널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교육은 부동산만큼이나 개인의 욕망이 투사되는 영역이지만, 돈이 없으면 포기라도 하는 부동산과는 또 다르다. 학벌이 노동시장 진입과 계급을 결정하다시피 하는 사회에서 그 욕망을 이기적이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대학서열 완화를 위한 개혁정책은 발도 못 떼고 있다. 비전과 철학, 갈등 사안에 대한 섬세한 설득,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요소를 없앨 방안의 제시 없이 구체적인 제도 선택을 여론에만 맡긴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치닫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공교육의 회복은 정말로 요원해진다.

그러니 과열된 입시 논쟁에서 한발 떨어져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다시 명확히 하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국가교육회의에 실질적 권한을 주든, 새로운 틀을 짜든 학교 현장,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 책임성 있게 논의해야 한다. 방향이 확인되면, 구체적 정책은 공론을 수렴해 얼마든지 속도를 조절할 수도, 보완책을 찾을 수도 있다. 모두가 만족할 입시제도는 ‘환상’이지만, 다수가 공감하는 교육의 방향은 있다. 하나하나의 아이들이 소중한 저출산 시대라면서 상위권 인재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교육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순 없지 않은가.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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