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06 18:26
수정 : 2018.09.06 19:10
안재승
논설위원
통계청장 교체를 부른 2018년 1·2분기 가계동향 소득부문 조사를 2017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표본 수와 구성이 많이 바뀌어 표본의 대표성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소득분배 상황은 보여줄 수 있지만 시계열 비교를 하면 오류에 빠진다.
역설적이게도 가계동향 소득부문 조사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될 운명이었으나 민주당이 도로 살려냈다. 통계청은 조사 대상 가구의 응답 기피가 갈수록 심해져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보고 가계동향 소득부문 조사를 중단할 방침이었다. 대신 올해부터는 소득분배 지표로 매년 말 한차례 공표되는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가계금융·복지 조사는 국세청 납세자료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높다. 그런데 민주당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측정하는 데 분기별 통계가 필요하다며 가계동향 소득부문 조사 관련 예산을 재배정했고, 통계청이 표본을 급히 구성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소득분배 지표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통계청은 2012년에도 같은 이유에서 소득분배 지표로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공표하려 했는데 당시 ‘이명박 청와대’가 막았다. 통상 고소득층의 소득 실태가 상대적으로 정확히 드러나는 가계금융·복지 조사는 가계동향 소득부문 조사보다 소득분배 지표가 나쁘게 나온다. 실제로 2012년에도 그렇게 나왔다. 그러자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경제수석실이 통계청에 압력을 넣어 공표를 못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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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장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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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번에 청와대가 소득분배 지표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서 통계청장을 교체한 것은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통상적인 차관 인사라고 해명했지만 군색해 보인다. 오이밭에선 신발 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야당의 정치 공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통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주요 통계가 나올 때마다 소모적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또 통계청이 통계 품질을 높이기 위해 조사 방법과 표본을 개편하는 데 소극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통계는 정책 수립의 기본 자료이자 정책의 집행 결과를 평가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통계의 신뢰 하락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부가 통계 불신을 해소할 대책을 시급히 내놔야 한다. 통계청의 독립성 강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통계청은 기획재정부 산하 외청이다. 통계청이 기재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1990년 통계청 설립 이후 역대 청장 17명 가운데 12명이 기재부 관료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통계청장을 거쳐 장관이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승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나머지 5명도 경제학자이지 통계 전문가는 1명도 없다.
통계청 독립성 강화는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통계의 독립성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그래서 국가통계위원회를 만들었고 통계청장을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시켰다. 또 통계청장 임기제와 공모제도 도입하려 했다. 그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단됐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어가면 된다. 통계청을 더 이상 기재부 산하에 둘 이유가 없다. 통계에 경제 통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통계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통계청의 위상을 강화하고 통계청장 임기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사례를 찾아보면 통계청의 위상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임기제는 대부분 시행하고 있다.
통계청 독립성 강화는 통계 품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통계 품질을 높이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전문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다른 기관의 행정자료도 원활하게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통계청 처지에선 모두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이번 통계 논란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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