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3 15:30
수정 : 2018.09.13 23:00
백기철
논설위원
최근 북핵 관련 한 모임에서 이홍구 전 총리는 북핵 위기의 기점을 1990년 독일 통일로 올려 보았다. 1차 북핵 위기는 1994년이지만, 통독 이후 북한의 선택에서 북핵이 비롯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보면, 북핵 위기는 한 30년쯤 됐다. 올해 남북 정상이 다음주 평양회담까지 세차례 만나고, 북-미 정상도 두차례 만날 가능성이 제법 커졌다. 북핵 30년 만의 대전환점인 셈이다.
북핵 위기가 통독에서 비롯됐다는 건, 우리가 지난 30년간 ‘독일 통일 모델’을 통해 한반도를 바라봤다는 말이 된다. 남북한은 동상이몽으로 독일 모델을 해석하고 대처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녘 지도자로서 세번째 평양행을 앞둔 지금, 독일 모델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독일 모델에 기반한 가장 큰 환상은 북한붕괴론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도 동독이나 옛소련처럼 곧 무너져내릴 것이란 관측이 팽배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건재한 중국이 버팀목이 됐고, 북한은 붕괴할 내적 동력마저 없었다. 북한은 통독 이후 핵을 택했고, 1·2차 북핵 위기를 어찌어찌 넘기며 실질적인 핵 보유국의 초입에 와 있다.
서독의 동방정책처럼 우리도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일궈내 북방으로 뻗어가리란 관측도, 현재로선 먼 미래의 희망일 뿐이다. 진보 정권 10년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정도가 남았는데, 보수 정권을 거치며 거의 없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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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열린 지난 4월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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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세월, 붕괴를 위한 압박도, 공존을 위한 대화도 사실상 실패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북핵 현실이다.
북핵 위기는 진실의 순간에 다가서고 있다. 그동안 본질은 외면한 채 줄곧 미봉됐다. 북한은 핵 카드를 흔들며 체제 보장을 요구했지만, 미국과 남한은 어떻게든 북한을 무릎 꿇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 역시 핵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30년이 지나서야 체제 보장과 평화, 체제 보장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
독일과 달리 한반도에선 모든 게 한꺼번에 뚫리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나가떨어지는 그런 사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북핵을 일거에 해결하는 극적 돌파구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뭔가 ‘한 방’으로 쉽게 해결하려 들면 또다시 쓰라린 교훈을 얻을 뿐이다. 남북한과 주변 4강의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긴 과정으로서의 비핵화, 평화 프로세스가 있을 뿐이다.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순서를 놓고 말이 많지만, 동시행동을 원칙으로 하되 때로 북한이 반걸음 정도 앞서가는 게 낫다. 왜냐면, 북한은 핵을 개발한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이라지만, 온 겨레의 목숨을 담보로 ‘핵 놀음’을 한 건 북한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이번 평양행에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너무 큰 기대도, 섣부른 회의도 적절치 않다. 비핵화와 남북협력에서 비록 작지만, 이후 큰 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면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도 “선의를 믿어달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선의는 행동으로 입증돼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평양행이 화려하고 광폭스러웠다면, 문 대통령의 평양행은 내실 있고 단단했으면 한다. 이번에 못 하면 다음에 한다는 자세로 2박3일 동안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내년 봄 제주나 서울 정도로 다음을 기약하면 좋다. 들뜨거나 낙담할 필요도 없다. 느리지만 뚜벅뚜벅 뚝심 있게 가야 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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