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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7 17:34 수정 : 2018.09.27 19:33

김영배
논설위원

사람들로 가득한 계단길 양옆에 야생화가 널려 있었다. 보랏빛 꽃은 비로용담, 노란색은 애기금매화, 연분홍은 바위구절초라고 했다. 1442계단을 30~40분 걸어 오르자 커다란 표지석이 보였다. 붉은 글씨로 ‘中國 37 2009’라고 쓰여 있었다. 뒷면의 글귀는 ‘조선 37 2009’였다. 두어 걸음 더 올라가니 ‘天池’라고 적힌 작은 표지석이 나타나고 그 아래쪽으로 파란 호수가 펼쳐졌다.

지난 7월 백두산에 오른 날 하늘이 맑았다. 깨끗한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다음엔 북한 쪽으로 올라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두달 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정상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고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초현실적 모습을 보니 꿈을 절반쯤 이룬 듯했다.

중국 쪽에서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7월 여행 때 오른 서파(西坡)는 그중 하나다. 파(坡)는 언덕, 고개, 비탈의 뜻을 담고 있다. 중국 쪽 길은 이 밖에 남파, 북파가 있다. 서파는, 9월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른 곳의 대척점인 셈이다.

지난 9월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찍은 천지의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백두산 서파 쪽 북-중 경계비를 중심으로 북한 쪽은 텅 비어 있고, 중국 쪽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중국은 ‘천지’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별도 요금을 물리는 식으로 실속을 챙기고 있다. 사진을 찍고 나온 사람이 우리 돈으로 1만원을 냈다고 전했다. 끼어들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줄이 길었다. 노약자를 실어 나르는 계단길 ‘가마꾼’의 모습도 이채로웠다.

남북 사이의 애초 약속대로였다면, 북한 쪽으로 백두산을 오르는 문 대통령의 꿈은 앞당겨 이뤄졌을 터다. 남북은 2005년 7월 개성 및 백두산 관광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의 ‘10·4 선언’(6항)에서는 백두산 관광을 위한 직항로를 열기로 했으며 그해 11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관광 합의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곧이어 정부 합동실사단의 현지 답사까지 이뤄졌지만, 2008년 7월 금강산관광 중단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끊기면서 미뤄졌다.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상징성을 제쳐두고라도 객관적 여건으로 뛰어난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일대에는 1200종 남짓의 고산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가 자라고 있단다. 백두산 일대가 1980년 유네스코 국제생물권보호구로 지정된 배경이다. 또 천지는 밑에서 솟는 물로 사철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대 수심이 384m에 이를 정도로 깊다. 호수면 넓이는 9.165㎢로 여의도 면적(윤중로 제방 안쪽 기준)의 3배를 웃돈다.

백두산 서파 쪽 표지석의 숫자 ‘37’은 37호 경계비를 뜻한다. 통상 ‘5호 경계비’라고 부른다. 1990년에 세운 비에는 ‘5’라고 적혀 있었는데, 2009년에 바뀌었다. 이 경계비 건너편 북파 쪽에 38호 경계비(통상 6호 경계비)가 서 있고, 두 비석을 잇는 선을 따라 천지가 양쪽으로 나뉜다. 경계비 근방에는 무장군인이 지키고 있어 삼엄한 국경선임을 실감케 했다.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국경선, 남북 간 철조망의 긴장감이 연장된 듯했다.

9월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훈풍이 국경선의 긴장감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가 풀리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가능하겠지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조업 재개와 백두산 관광 개시를 기대하게 만드는 분위기만으로도 반갑다. 대립과 긴장의 국경선이 우호의 접합점, 나아가 양쪽의 영역을 넓혀주는 확장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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