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01 17:55 수정 : 2019.01.01 19:29

박병수
논설위원

해군의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에 탑재된 ‘시 스패로’ 대공 미사일은 ‘사격통제 레이더’의 빔에 유도돼 발사된다. 군함에 항공기가 접근하면 ‘MW-08 탐색 레이더’가 이를 탐지한다. 함장이 이 항공기를 위협으로 판단해 격추를 결심하면, MW-08 레이더는 이 항공기의 방위각과 거리, 고도 정보 등을 ‘STIR-180 추격 레이더’에 넘겨주고, STIR-180 레이더는 이들 정보로 항공기의 위치를 확인한 뒤 빔을 조준해 비춘다. ‘시 스패로’ 미사일은,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이 레이더 빔이 항공기에 반사돼 돌아오는 전자파에 유도돼 날아가 항공기를 격추한다.

항해 중인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
따라서 STIR-180 레이더의 빔을 조사하는 것은 바로 총구를 겨누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항공기 입장에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한-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레이더 조준 논란이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일본 방위성은 “광개토대왕함이 지난 20일 동해상에서 해상자위대의 ‘P-1 대잠초계기’에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당시 표류 중인 북한 어선의 탐색을 위해 MW-08 레이더를 가동했지만, 사격통제용인 STIR-180 레이더는 켜지도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일본은 급기야 당시 초계기에서 촬영한 13분7초 분량의 동영상까지 공개했지만, 거기에 진실공방에 마침표를 찍을 만한 실체적 진실이 들어 있는 것 같진 않다. 사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일본 초계기가 당시 확보한 전자파를 정확하게 공개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본이 군사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니 결국 이번 일은 공방으로만 끝날 공산이 크다.

일본이 이번 논란을 공세적으로 제기하는 모습에서 정치적 배경이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아베 신조 정부가 최근 방위대강에서 밝힌 국방력 강화 계획의 명분을 얻기 위한 포석이라거나, 떨어지는 지지도를 부양하기 위한 의도적인 갈등 조장이라는 분석 등이 나온다. 속내가 무엇이든, 국내 정치적 명분을 얻기 위한 도발 대상으로 한국을 정조준한 지점에선 입맛이 씁쓸하다.

일본은 과거에도 외국과 레이더 조준 공방을 벌인 전례가 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이 한창이던 2013년 2월 일본은 동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구축함이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사격통제 레이더를 비췄다며 항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 부인하고 나서 한동안 논란이 이어졌다. 비슷한 공방이 이번에 한-일 간 일어난 것은 양국 관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렵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50여년 전 일제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을 봉합했던 한-일 청구권협정의 매듭이 최근 다시 풀리면서, 그동안 두 나라 관계를 떠받치던 1965년 한일조약 체제가 밑둥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다른 현안과 분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번 사태는 이런 ‘투 트랙’ 노선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일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 같다.

사실 한-일 간 1965년 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환경과 조건은 진작에 달라졌다. 탈냉전 이후 냉전 논리에 억눌렸던 보편적 인권 의식이 고양되면서 과거 일제의 야만적 폭력은 보편 인권의 맥락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반면 그동안 두 나라를 긴밀히 묶어준 경제·안보 협력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그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낡은 틀이 해체 과정에 들어선 국면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를 대신할 새 전망은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당분간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가 걱정스럽다.

su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