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03 17:12
수정 : 2019.01.03 20:51
백기철
논설위원
지난해 한 토론모임에서 북핵 전문가가 비핵화 협상의 종착점은 결국 “평화체제가 확고히 정착돼 북한이 설사 핵무기 몇개 숨겨놔도 쓸모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평화 프로세스를 통한 북핵 소멸론’ 정도로 불릴 법한데, 참석자 상당수가 격렬히 반발했다. “북핵을 인정하자는 거냐”며 한개의 핵도 북에 쥐여줄 수 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다른 모임에선 한 전문가가 역대 핵 보유국들의 경우 핵무기 개발 뒤 15년 정도 지나면 그 효용이 변했다고 했다. 애초 공격수단이던 핵이 방어수단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 핵 개발을 본격화해서 2017년 하반기 그 시점에 도달했다. 이때 북한은 핵을 ‘만능의 보검’에서 ‘평화의 보검’으로 바꿔 불렀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이 모임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핵 보유 국가란 점을 지적했다. 비핵화 방법론에선 ‘제재파’와 ‘협상파’로 갈렸지만, 이런 기본인식은 대동소이했다. “핵을 보유한 북한과 상당 기간 공존할 수밖에 없다” “북핵을 어떻게든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은 그간 해마다 플루토늄 6㎏과 우라늄 80㎏씩을 생산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제 핵 개발국이 아니라 핵 보유국이 됐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는 1994년 제네바합의 때 북 외무성에서 이를 지킬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북한은 당시 대외적으론 ‘우리 목표는 조선반도 비핵화이지 핵 개발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이 죽고 대홍수가 나자 시간을 벌려는 고육책으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 말이 꼭 틀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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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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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2005년께 남한의 핵 개발을 고민했다. 9·19 합의가 표류하자 우리만 당하고 있을 수 없다며 핵연료 문제를 제기하자고 했지만 주변이 만류했다. 미국이 용인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장관이던 송민순의 증언이다. 노무현은 ‘플랜 비(B)’를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김정은의 ‘소파 신년사’를 들으며 그가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뭘까 궁금해졌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는 건 좋게 들으면 ‘핵 동결 약속’이고, 다르게 들으면 ‘핵 보유 선언’으로 들렸다.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게 북이 제네바합의 때 내건 것과 다르다 해도, 그 시점이나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최소한 서방이 생각하는 ‘속전속결식·백기투항식’ 비핵화는 아닌 것 같다.
김정은의 속내가 어떻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노무현식 ‘플랜 비’를 생각하긴 어렵다.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 대북 선제공격이 쉽지 않다는 건, 트럼프가 그렇게 공언하고서도 접은 데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핵 없는 한반도’의 꿈을 포기할 순 없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건 촘촘한 제재와 미국의 전략자산일 것이다. 이 채찍과, 경협이라는 당근을 적절히 섞어가며 비핵화로의 긴 여정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낙관도 비관도 말고 담담히,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한다.
지난 한해 국제사회는 이런 ‘북핵 딜레마’를 서서히 깨달았는지 모른다. 북-미 정상이 만났으니 북핵이 곧 해결되리란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조금씩 분명해졌다. 우리 역시 비핵화가 민주화처럼 ‘한판의 승부’가 아니란 걸 깨달아가고 있다.
어쩌면 ‘플랜 비’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건지 모른다. 북한에 단 한개의 핵도 없는 세상은 당분간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든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북핵 현실을 바로 보는 ‘진실의 순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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