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국제정치학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은 보이지 않는 나라다. 미국 국제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국의 언급은 소략하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조언하는 이 국제지정학 저작은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언급하고는 있지만,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다. 브레진스키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려면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속내마저 감추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은 더욱 빈약하다. 한국은 중화 문명에 포섭된 조그만 반도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의 지정학적 독자성은 찾아볼 수 없다. 두 저작이 20세기 말에 나온 것이어서 최근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탓일까. 하지만 2017년에 출간된 리처드 맥그레거의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를 보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1세기 변화한 상황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해부하고 있지만 한국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어판 부제가 가리키는 대로 이 책은 ‘미·중·일 3국의 패권전쟁 70년’을 다루고 있을 뿐이며, 동아시아 한복판에 있는 한국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저자가 <파이낸셜 타임스> 특파원으로 도쿄와 베이징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아시아 국제정치학의 과거와 현재를 그려내는 데 한국과 한반도가 이토록 소략하게 취급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서 러시아와 우위를 다투고, 군사 규모에서도 일본·영국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보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이 동아시아 지정학의 하위변수, 종속변수라는 굴욕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의 대치 상태가 국제정치학에서 우리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백두산 천지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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