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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5 15:20 수정 : 2019.10.15 19:25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12일 저녁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주장하며 검찰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역 네거리에서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역사는 어떤 혁명도 단번에 완수되지 않으며 예외 없이 성장과 도약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바스티유 함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베르사유궁에는 여전히 루이 16세가 왕좌를 지키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은 입헌군주제를 거쳐 왕의 자리를 없애는 공화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2단계 과정을 거쳤다. 시야를 더 넓혀, 1871년 파리코뮌에 이은 제3공화정의 확립에서야 혁명이 목표에 이르렀다고 보는 학설이 있는가 하면,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대통령 당선으로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혁명이 완수됐다는 평가도 있다.

촛불혁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16년 겨울 내내 1700만 촛불 시민이 모여 부패한 정권을 축출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가치에 조금 더 충실한 세력으로 정부가 바뀌었을 뿐이다. 기껏해야 혁명의 1단계라고 할 정권 교체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70년 동안 구축된 ‘앙시앵레짐’을 뒷받침하던 권력 집단은 온전히 남아 여전히 강고한 성채를 지키고 있다.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옛 체제의 기둥과 초석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촛불 시민의 열망인 참된 민주주의 사회는 오지 않는다. 촛불혁명이 내건 높은 목표와 정권 교체 이후 펼쳐진 현실 사이 커다란 격차는 혁명의 전진과 도약을 요구한다.

조국 일가 수사로 촉발된 서초동 촛불집회는 2016년 촛불혁명의 관점에서 거듭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100만을 헤아리는 시민이 주말마다 검찰청을 에워싸고 촛불을 들어올렸다. 수백만 시민이 거대한 직접행동으로 검찰 개혁을 시대의 과제로 내세운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초동 촛불의 구호는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로 요약된다. 이 두 구호는 같은 층위의 것이 아니다. ‘조국 수호’가 대중의 마음에 불을 지핀 직접적 발화점을 가리킨다면, ‘검찰 개혁’은 촛불혁명이 목표로 삼은 앙시앵레짐 해체라는 본질적 요구를 가리킨다. 모든 혁명은 우연적인 계기와 필연적인 목표의 결합에서 탄생한다. 우연적인 사건은 필연적인 내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일 뿐이다. 조국이라는 우연을 통해 검찰 개혁이라는 필연이 절박한 국민적 과제로 떠올랐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법의 이름으로 권한을 남용하고 인권을 짓밟는 검찰권력의 민낯이 조국 일가 수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혁명의 진전에는 물리학의 법칙처럼 반작용이 뒤따른다. 반란에 가까운 검찰의 행태는 촛불의 요구를 제압하려는 검찰권력의 조직적인 저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저항의 대열에서 앙시앵레짐의 몸통에 해당하는 기득권 세력이 일사불란하게 손을 잡았다. 사회학자 이진경이 진단한 대로 그 반란의 작전사령부 역할을 한 것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언론권력이다. 수구 언론은 ‘반도덕적 도덕주의’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검찰 개혁 요구를 무력화하려고 했다.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집단이 도덕을 무기로 내세워 상대방을 공격하고 탄핵했다. 그 자신들도 전혀 믿지 않는 도덕적 순결주의를 프레임으로 들이밀어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언론과 집단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진경은 조선일보가 짠 이 프레임에 걸려든 언론 일반의 증상을 ‘조선일보 증후군’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오랜 민주주의 훈련을 거쳐 촛불혁명을 이룬 대중은 수구 언론권력의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쌓은 집단지성으로 사태의 진실을 추적해 수구 언론의 프레임을 격파했다. 그 결과가 서초동을 뒤흔든 장대한 촛불 십자가의 함성이다. 이진경의 말대로 서초동 촛불은 현명한 대중의 정치, 곧 중현(衆賢)정치의 발현이다.

검찰 개혁은 촛불혁명이 내건 과제의 일부일 뿐이다. 기득권 체제를 떠받쳐온 언론권력, 사법권력, 경제권력, 정치권력의 해체와 재편이 이뤄질 때 촛불의 요구는 완수될 수 있다. 혁명은 중도에 멈추면 역풍에 휩쓸리고 만다. 수많은 혁명이 그렇게 유산되고 좌절했다. 촛불혁명의 성패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얼마나 꿋꿋하게 반작용의 힘을 뚫고 나아가느냐에 달렸다. 조국 사퇴는 촛불의 목표를 앞당기는 동력이 돼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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