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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4 18:01 수정 : 2019.12.25 02:37

지난 5월23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 추도식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5월23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 추도식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참여정부 4년차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독자적 핵무장을 고민했다. 2005년 도출된 9·19 공동성명이 방코델타아시아(비디에이·BDA) 문제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던 때다.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 이렇게 적었다.

“2006년 4월 초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노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여 곱사등처럼 돼 있는데 당하고만 있지 말고 최소한 자체 핵연료 주기 문제를 의제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송 실장이 나서서 방법을 강구해보라’고 했다.”

(2006년 9월 부시를 만날 즈음) “당시 노 대통령은 비디에이 문제로 미국이 북한 핵을 방치하면, 핵확산방지조약(엔피티·NPT) 체제는 붕괴될 것이고, 그때 가면 한국도 핵 옵션을 고려해야 하므로 동북아 핵 확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2016년 책이 나온 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 고민’ 실체가 궁금했다. 최근 심상치 않은 북-미 기류를 보면서 다시 이를 떠올렸다. 송 전 장관에게 전화로 물었다.

― 노 대통령이 실제 핵개발을 염두에 둔 건가, 협상용으로 생각한 건가?

“이 문제를 말하려면 당시 메모나 기록을 다 뒤져야 한다. 책에 기초하는 게 좋겠다. 핵 주기를 갖춘다는 것인지, 협상 카드였는지도 글 속에 있다.”

― 핵을 갖추겠다는 걸로 읽힌다.

“13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의 생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최근 장관께서는 “한반도 핵 균형을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핵 능력의 토양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군사적 이용 사이엔 방화벽이 없다. 국가는 가능성의 문을 모두 열어둬야 한다. 북한 성의만을 믿고 국가안보를 걸 순 없다.”

― 한-미 원자력협정은 비군사적 농축·재처리도 금하고 있다.

“토양에는 국민 여론, 정책적 의지, 다른 나라에 대한 명분 축적 등이 다 포함된다. 협정을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라 정지 작업을 하자는 거다.”

―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 또는 공유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해놓고 트럼프 같은 사람이 부르는 대로 돈 내라고 하면 어쩔 건가. 그렇게 하면 북한과 일대일 대화가 안 되지 않나. 한반도의 주인이 미국하고 북한이 되는 것 아닌가.”

― 미국은 한국의 소량의 우라늄 농축(2000년), 플루토늄 추출(1982년)을 2004년에야 문제 삼았다. 노 대통령의 핵 의지와 연관이 있나?

“내가 아는 한 연관이 없다. 노 대통령이 핵 의지를 가진 건 9·19 공동성명으로 진전을 기대했는데 북-미가 대립하니까 도대체 우리는 뭐냐고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기백이 있는 분이다. 나라의 기풍, 우리도 뭘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강했다.”

당시를 돌아보면 노무현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2003년 2월 노무현 취임 한 달 전, 북한은 엔피티를 탈퇴했다. 2006년이면 노무현이 3년여 북·미의 ‘패악질’에 넌덜머리가 날 때다.

‘핵 카드’는 노무현다운 ‘발상의 전환’이다. 한-미 에프티에이(FTA), 대연정처럼 승부사적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노무현의 고민에는 전시작전권 환수로 대표되는 자주국방, 북·미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독자 외교, 힘의 균형을 통한 대등한 외교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연말연초를 고비로 ‘북한 핵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접고, 핵보유국 지위를 굳힌 뒤 새로 협상하려 들지 모른다. 노무현의 핵 고민은 2007년 2·13 합의와 남북정상회담으로 현실화하진 않았다. 이번에도 우리가 핵을 고민할 이유가 없게 되길 고대한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핵을 물릴 생각이 없다면, 그런 북한과 어떻게 맞닥뜨릴지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라, 어떤 제약이나 도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원점에서 방책을 찾자는 것이었다.

북핵 정책의 이른바 ‘플랜비’는 전대미문의 평화 공세가 될 수 있고, ‘핵개발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북핵 동결 또는 일부 핵 보유를 카드로 해서 북한과 돌이킬 수 없는, 상상을 뛰어넘는 평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백기철ㅣ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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