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에 대한 전략적인 평가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구성되지 못하고 힘센 기관의 입김에 따라 그때그때 한국형 전투기(KF-X)의 성능이 변경되어왔다. 한국형 전투기 모델 이미지.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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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청와대의 엉터리 KF-X 사업 결정
10월27일 청와대에서 방위사업청(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에 대한 종합대책을 보고했다. 1시간 정도 이어진 이 보고회의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우선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 동기동창생 출신이다. 국과연에서 연구원과 본부장, 연구위원으로 잔뼈가 굵은 장 청장은 자신의 친정을 절대 배신할 수 없다.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장은 합참에서 본부장을 역임한 3성 장군 출신으로 무기체계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다. 공교롭게 한민구 국방장관과는 고등학교와 육사 모두 2년 후배다. 또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합참의장으로 재직한 참여정부 말기에 정 소장은 합참 전략기획본부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육사 5년 후배다. 정 소장은 어떻게든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서 국과연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업체가 전투기 체계 개발을 주도하지만 국과연 역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 사업을 별도 사업으로 만들어 주도해야 한다. 장 청장과 정 소장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첨단 레이더에 대한 핵심기술 이전을 하지 않는 것은 전투기 사업의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국과연이 국산 레이더 개발 사업을 움켜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이 이전하지 않는 핵심기술을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는 이들의 보고를 받고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문제가 된 전투기 핵심기술의 국산화 여부를 살펴보려면, 우리의 기술적 준비 상태와 재정 여건까지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제3의 전문기관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업 타당성을 검토할 당시에 전자식 레이더(AESA)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것이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한 기관은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다. 만약 레이더를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면 당연히 이들 기관의 의견도 참고했어야 한다. 또한 국내 개발이 추진될 경우 추가될 상당한 비용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가 이미 검토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의견도 청취했어야 한다. 국과연이 아무리 레이더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투기의 구성품에 불과하다. 정작 전투기 체계 종합의 당사자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과연이 개발하는 레이더에 찬성하는지도 매우 중요하게 고려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국과연이야 자체 계획대로 레이더 개발만 하면 그만이지만 나중에 이 레이더를 항공기에 통합하는 체계 종합 업체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전투기 전체 체계를 종합하는 당사자는 의견을 개진할 수 없고 일부 구성품만 만드는 기관만 의견을 개진하는 희한한 풍경이다.
이렇듯 이해관계자들이 다 모여서 합리적인 대안을 두고 의견을 조정하는 모습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을 독점하고 밀어붙이는 행태는 전투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 전투기는 돈과 시간을 주고 만들라고 하면 군말 없이 만드는 철공소와는 다르다. 전투기 개발에 있어 다양한 의견들이 박 대통령에게 전혀 보고되지 않고 이해당사자인 국과연 전직 연구위원과 현직 소장의 의견만 듣고 대통령이 초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결정을 끝냈다는 것은 이 사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결정 뒤에 나타날 복병들
게다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역시 전투기를 철공소에서 만드는 것으로 아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의 문외한이다. 그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여 답변한 내용을 보면, 그는 미국과의 기술이전 협상에 대한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레이더와 적외선 추적장치 등 핵심장비를 개발하는 기술적 준비 정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014년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주관한 항공전자장비에 대한 객관적 기술성숙도 평가 결과는 전자식 레이더에 대한 국내 기술 수준이 요구 수준의 14%에 불과해 체계 개발 가능성이 어렵다고 했다. 한편 사업 파트너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사는 전자식 레이더 등 항공전자장비의 체계 통합을 담당하는 조건으로 한국항공과 함께 한국형 전투기에 대한 개발비 투자와 사업 참여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과연이 자체적으로 레이더를 개발하게 되면 록히드마틴은 “체계 종합이 어렵다”며 불참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록히드마틴이 불참할 경우 한국항공은 자체 기술력만으로 체계 종합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록히드마틴이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의 사업비 부담은 1.9조원이 추가로 소요되며, 전자식 레이더 개발에도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사업비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체계 종합 여부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면 기획재정부는 당연히 사업을 재검토하자고 주장하고 나올 것이다. 이런 사정을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과연 알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국방과학연구소라는 한 기관만의 의견을 고려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한 이상, 앞으로 정부 기관 어디에서도 대통령의 결정에 반하는 의견을 개진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한국형 전투기 체계 개발이 착수되어 앞으로 10년이라는 개발 시한까지 제시된 상황이지만 전자식 레이더는 총 6단계 기술 수준 중에서 3~4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필요한 기술의 90%를 확보하였다”고 말한 것과 한참 동떨어진 실상이다.
여기서 전자식 레이더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기계식과 달리 전자식 레이더는 ‘티아르 모듈’(Transmitter-Receiver Module)이라고 하는 수많은 겹눈이 박혀 있다. 이 모듈이 바로 전파를 수신하는 장치다. 국과연이 69억원을 들여 개발한 반도체 송수신기는 256개의 모듈이 들어가 있고, 지상시험용은 500개가 들어가 있다. 이것이 항공기용 레이더가 되려면 1000개의 모듈이 필요하며 지상용과 달리 소형화·경량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단계는 기존의 지상과 해상용 레이더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인데다, 설령 소형화가 되었다 해도 그 기능이 조종사가 보는 하나의 화면에 다른 데이터와 함께 동시에 시현될 수 있는 체계 통합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 장비 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지금 국과연이 확보했다고 하는 기술은 항공기에 필요한 공대공과 공대지용 전자식 레이더가 아니다. 설령 그런 항공기용 레이더를 개발했다고 해도 체계 통합이라는 더 고난도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국과연 계획은 2020년까지 392억원을 투입하여 공대공 모드의 전자식 레이더 시제 개발을 완료하고 2024년까지 공대공과 공대지 모드를 개발한 다음 곧바로 전투기에 장착한다는 것이다. 시제 개발 중 소프트웨어 개발 기간은 9개월이고, 시험평가도 불과 9개월 만에 완료해야 성공할 수 있는 초현실적인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가대통령 보고한 ‘한국형 전투기’
미국의 기술 이전 실패는
국방과학연구소 사업 기회로
방사청장은 대통령 70학번 동기 전투기는 ‘뚝딱’ 안 만들어져
1천개 겹눈의 ‘전자식 레이더’ 등
부품 개발과 체계 종합이 관건
미국도 20년 안팎 걸리는데
허황된 계획 세우고 있나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오른쪽)이 출석해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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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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