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국제 에디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단둥~베이징까지만 특별열차로 14시간 안팎을 달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네번째 회담을 했다. 잠잠한 것보다는 징조가 좋은 대외 메시지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와 방중 이후 공은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머지않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장소를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관철할 실무자들이 열쇠를 쥐는 도돌이표 정세가 도래할 것이다. 장소와 시기를 먼저 정하고 의제를 논의했던 1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의제를 먼저 협의한 뒤 시기·장소를 결정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2차 정상회담 양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선 ‘선수 교체’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전히 미국의 대표 선수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 확률이 높다. 그가 미국 내 어떤 인물들과 만나고 어떤 전략을 짜는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입력하는지가 향후 북-미 실무·고위급 협상 및 정상회담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북 협상에만 국한해 본다면 지금까지 ‘두명의 폼페이오’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이행했던 초기 폼페이오와 워싱턴 외교가의 주류에 순치된 폼페이오다. 기점은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싱가포르 회담 이전에 폼페이오는 3월31일~4월1일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격으로, 5월9일 국무장관 자격으로 두차례 방북했다. 폼페이오는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디딤돌을 놓았다. 하지만 또 한명의 폼페이오가 있었다. 싱가포르 회담의 첫 후속협의였던 지난해 7월6~7일 3차 방북과 10월7일 4차 방북 때의 폼페이오다. 특히, 그의 3차 방북은 싱가포르 회담의 성과를 거의 원점으로 되돌리는 ‘정세 후진’의 분기점이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에 일방적 양보만 했다는 미국 내 조야의 등쌀에 못 이겨, 폼페이오는 그들이 주문하는 ‘북한 다루기’ 비법을 갖고 방북했다. 핵시설·핵무기 신고목록을 주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할 수 없다며 문턱을 잔뜩 높였고 양쪽의 공개적인 거친 언사들까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방문, 이어진 폼페이오의 4차 방북도 국면을 전환시킬 수 없을 만큼 3차 방북이 남긴 후유증은 길고도 깊었다. 당시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는 지금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은 폼페이오에게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고, 미국은 김영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얻은 ‘학습효과’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플랜 비(B)’가 필요하다는 판단일 수 있다. “급할 것 없다”며 “인내”를 끄집어낸 미국에 대해 북한은 대응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을 부쩍 강조한 이유다. 제재의 창끝을 둔화시킬 수만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기존 핵무기 보유는 기정사실화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현상 유지일지도 모른다. 북한은 미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을 보면서 시간을 벌수록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김정은의 방중 뒤엔 폼페이오의 방북이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 이번에도 폼페이오가 방북을 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다시 방북한다면, 혹은 북의 협상 상대를 만난다면 3차 방북 때 수첩에 적어놓은 ‘북한 길들이기 비법’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시간 싸움에서 미국이 유리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yyi@hani.co.kr
칼럼 |
[편집국에서] ‘두명의 폼페이오’와 2차 북-미 정상회담 / 이용인 |
한반도국제 에디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단둥~베이징까지만 특별열차로 14시간 안팎을 달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네번째 회담을 했다. 잠잠한 것보다는 징조가 좋은 대외 메시지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와 방중 이후 공은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머지않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장소를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관철할 실무자들이 열쇠를 쥐는 도돌이표 정세가 도래할 것이다. 장소와 시기를 먼저 정하고 의제를 논의했던 1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의제를 먼저 협의한 뒤 시기·장소를 결정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2차 정상회담 양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선 ‘선수 교체’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전히 미국의 대표 선수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 확률이 높다. 그가 미국 내 어떤 인물들과 만나고 어떤 전략을 짜는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입력하는지가 향후 북-미 실무·고위급 협상 및 정상회담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북 협상에만 국한해 본다면 지금까지 ‘두명의 폼페이오’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이행했던 초기 폼페이오와 워싱턴 외교가의 주류에 순치된 폼페이오다. 기점은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싱가포르 회담 이전에 폼페이오는 3월31일~4월1일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격으로, 5월9일 국무장관 자격으로 두차례 방북했다. 폼페이오는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디딤돌을 놓았다. 하지만 또 한명의 폼페이오가 있었다. 싱가포르 회담의 첫 후속협의였던 지난해 7월6~7일 3차 방북과 10월7일 4차 방북 때의 폼페이오다. 특히, 그의 3차 방북은 싱가포르 회담의 성과를 거의 원점으로 되돌리는 ‘정세 후진’의 분기점이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에 일방적 양보만 했다는 미국 내 조야의 등쌀에 못 이겨, 폼페이오는 그들이 주문하는 ‘북한 다루기’ 비법을 갖고 방북했다. 핵시설·핵무기 신고목록을 주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할 수 없다며 문턱을 잔뜩 높였고 양쪽의 공개적인 거친 언사들까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방문, 이어진 폼페이오의 4차 방북도 국면을 전환시킬 수 없을 만큼 3차 방북이 남긴 후유증은 길고도 깊었다. 당시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는 지금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은 폼페이오에게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고, 미국은 김영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얻은 ‘학습효과’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플랜 비(B)’가 필요하다는 판단일 수 있다. “급할 것 없다”며 “인내”를 끄집어낸 미국에 대해 북한은 대응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을 부쩍 강조한 이유다. 제재의 창끝을 둔화시킬 수만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기존 핵무기 보유는 기정사실화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현상 유지일지도 모른다. 북한은 미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을 보면서 시간을 벌수록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김정은의 방중 뒤엔 폼페이오의 방북이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 이번에도 폼페이오가 방북을 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다시 방북한다면, 혹은 북의 협상 상대를 만난다면 3차 방북 때 수첩에 적어놓은 ‘북한 길들이기 비법’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시간 싸움에서 미국이 유리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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