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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3 17:42 수정 : 2019.01.24 15:21

이종규
디지털영상부문장

그들은 늘 시간이 없다고 울상을 짓는다. 시계에서 종이 울릴 때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고 탄식한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면 그들은 속으로 소리친다. ‘이렇게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게는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가까스로 여가를 얻게 되었을 때는 이미 일을 하느라 지쳐 더 이상 즐길 여력이 없다.

100여년 전 남태평양 작은 섬의 추장 투이아비의 눈에 비친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다. 투이아비가 유럽 사회를 둘러보고 돌아와 섬 주민들에게 전한 이야기를 묶은 책 <빠빠라기>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빠빠라기’는 섬 주민들이 유럽인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네 삶은 ‘빠빠라기의 시대’보다 나아졌을까?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늘 시간에 쫓기는 빠빠라기는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넘친다. ‘타임 푸어’(시간 빈곤층)라는 조어가 널리 쓰인 지 오래다. 실제 지난해 한 취업정보 업체의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6%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업체의 조사에선 응답자의 71%가 자신을 ‘타임 푸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의 73%가 직무소진(자기개발 및 휴식 기회가 부족해 업무 효율성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경험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용노동부 ‘2014년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

지난 100년간 나날이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술이 쏟아졌는데, 사람들은 왜 여전히 시간 부족에 허덕일까? 누군가 우리의 시간을 훔쳐 가는 건 아닐까?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시간 도둑’처럼 말이다. <모모>에서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저축은행에 맡기라고 꼬드긴다. ‘쓸데없는 일’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기, 사랑하는 연인에게 매일 꽃 한송이 갖다주기, 일주일에 한번 지역 합창단 나가기, 매일 밤 15분간 창가에 앉아 하루 되돌아보기…. 하나같이 당장의 ‘경제적 이득’은 없지만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일들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회색 신사들의 꾐에 넘어가 악착같이 시간을 아끼지만 그들이 절약한 시간은 흔적없이 사라져갔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하루는 점점 짧아졌고, 사람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시간을 아껴 썼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만이 중요해졌다.

‘시간 도둑’의 정체는 뭘까? 물론 저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효율과 경쟁만을 좇는 경제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모>는 ‘더 빨리, 더 많이’라는 주술에 걸려 ‘시간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공장과 사무실에 붙어 있는 팻말(‘시간은 돈과 같다’)이나 길거리의 포스터(‘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시간을 절약하라!’)는 1990년대를 풍미한 ‘시테크’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시테크의 본질은 ‘자본의 노동시간 통제’가 아닐까? 시간 도둑과 맞서 싸우려면 일하는 사람들이 시간 사용의 주체성을 갖는 ‘시간 주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더 나아가 ‘저녁이 있는 삶’ ‘칼퇴근법’ ‘돌발노동방지법’ 같은 선거 구호들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수십년간 ‘시기상조론’를 무한 반복해온 낡은 레코드판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놓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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